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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버클리 공공정책대학원 이야기

[UC버클리 공공정책대학원 이야기] <1> 토론과 부끄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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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한국 학생들의 가장 큰 차이는 토론에 임하는 자세인 듯

토론에서 틀리는 것을 부끄러워하기 보다, 토론에 적극적으로 기여(contribute to)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인상적
자유롭게 토론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선배들의 배려가 필요해


필자는 최근 UC버클리 공공정책대학원에서 석사 과정(Master of Public Affairs, MPA)을 마쳤다. MPA는 경력 10년 내외의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3학기(여름, 가을, 봄) 동안 정책분석, 경제학 및 통계학, 리더쉽 등을 교육하는 과정이다. 51명의 동기들 중 미국인 이외에 외국 국적자는 35%였고, 주로 각국의 행정부 또는 입법부, NGO, 국제기구 등에서 일하던 친구들이 모였다. 그곳에서 느꼈던 작은 경험들을 몇 차례에 걸쳐 나눠 보고자 한다.


“토론에 기여하지 못해서 미안해.”

동기 중 D. 존슨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는 2018년 리치몬드시에서 역대 최연소로 당선된 시의원이었다. 매 수업마다 앞자리에 앉아 거의 모든 주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자기 의견을 냈다. 예를 들면, 최저임금에 대해 토론하는데 “우리 의회에서도 지난 달 최저임금의 적정성을 다뤘다.”는 식으로 본인의 경험을 더했다. 도움이 되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의견도 있었다.

미시경제학 시간이었다. 나는 D. 존슨 및 다른 2명의 동기들과 조별 토론을 했다. ‘수요곡선 위의 이동’과 ‘수요곡선의 이동’의 차이에 대해 논의했던 것 같다. 처음에 그는 언제나처럼 쾌활하게 웃으며 자기 의견을 냈다. 그런데 다른 동기 2명이 종이에 그래프를 그리면서 수요곡선이 이동하는 방향에 대해 논쟁을 벌이자, 그는 약간 혼란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영어가 짧기도 하거니와, 책에 있는 내용에 대하여 굳이 저렇게까지 논쟁을 해야 하나 싶어 이들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이후 D. 존슨은 약간 상기된 얼굴로 한동안 말문을 닫아 버렸다. 나는 혹여 그가 토론 주제를 잘 이해하지 못해 마음에 상처를 입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게 수업이 끝났다. 짐을 챙겨 점심을 먹으러 가려고 하는데, 그는 우리 조원들에게 다가와 뜻밖의 말을 건넸다. “이번 토론에 기여(contribute to)하지 못해 미안해.” 나는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도대체 왜 미안하다고 하는 것일까. 토론할 때 조용히 있는 것이 과연 잘못인가.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 말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단지 토론 내용을 따라가지 못해서가 아니라, 토론에 적극적으로 기여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양해를 구한 것이었다.


내가 토론을 부끄러워한 이유

옛날 생각이 났다. 나는 로스쿨에서 ‘부끄러움’ 때문에 토론에 잘 참여하지 못했다. 내 말이 틀리지는 않을까, 내 답변을 듣고 동기들이나 교수님이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염려했다. 당시에는 나의 의견을 공유하여 수업에 ‘기여’해야겠다는 발상 자체를 하지 못했다. 그렇게 수업에 ‘기여’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일일 수 있다는 생각은 더더욱 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 수업을 보는 나의 관점은 조금 달라졌다. 이전까지는 철저히 지식소비자의 입장에서, 숙련된 지식공급자(교수)의 정보를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받아들일지 만을 고민했다. 토론에 참여하는 동기들은 어쩌면 나와 교수와의 소통을 방해하거나, 수업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존재이기도 했다. 그러나 뒤늦게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의 관점을 수업에 더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 독특한 발언을 해도 괜찮다. 상대방의 기여를 인정하고, 그에 자신의 생각을 보태면서, 대체로 다수가 수긍할 수 있는 방향으로 논의가 모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생각이에요.” - 자유로운 토론을 가능하게 만든 교수님의 한 마디

첫 학기가 시작된 후 몇 주 동안은 교실에 그냥 앉아 있었다. 사실 앉아서 수업을 듣고 토론을 지켜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마냥 앉아만 있기가 너무 부끄러웠다. 매일 아침 ‘오늘은 한 마디라도 의견을 내야지’하고 다짐하며 교실에 들어갔지만, 마치 ‘라디오스타’에서처럼 쉴 틈 없이 쏟아지는 대화들 사이에 끼어들기가 어려웠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이번에는 토론을 시작하기 전에 불쑥 손을 들고 말을 꺼냈다. 문법에도 맞지 않게 몇 단어를 띄엄띄엄 말했던 것 같다.

다소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교수님이 대답하였다. “흥미롭군요.” 이후 교수님은 정말로 나의 의견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조금 더 이야기해 줄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두세 문장 정도 더 떠듬떠듬 말했는데, 교수님은 그동안 나와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그런 교수님을 보니 긴장감이 풀리고 마음이 편해졌다. 그 이후부터는 동기들이 내 의견에 덧붙여 이런저런 의견을 개진했다.

공공정책대학원에서의 수업은 대부분 토론식이었다. 교수님들은 강의를 하다가도, 본인이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 갑자기 강의를 중단하고 “3~4명씩 조를 나눠 토론해 보세요.”라고 하였다. 학생들이 엉뚱한 질문을 하더라도 항상 “좋은 질문입니다.” 또는 “좋은 생각이에요.”라고 대답한 후, 그 엉뚱한 생각을 좀 더 발전시킬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후드티와 반바지를 입고서 친구처럼 수업을 하는 교수님도 있었다. 그렇게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은 서로가 토론에 기여하고자 노력하였다.


토론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선배들의 몫

유학을 마치고 지난 7월 회사에 복귀했다. 예전에는 느끼지 못하였는데, 우리 회사의 토론 문화는 꽤나 경직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많은 회의에서 저년차 후배들은 조용히 선배들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처음에는 그들도 1년 전의 나처럼 토론의 주체로서 기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해서 말을 아낀다고 짐작했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몇몇 후배들이 발언을 했을 때, 약간 얼굴을 찡그리거나 냉정하게 질책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았다. 이런 딱딱한 분위기에서는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법조계가 너무 엄격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정답을 말하지 못하면 위축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에는 정해진 답이 없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역할은 주어진 공식을 풀어 정답을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의견을 경청하면서 개별 사안에 맞는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이 아닌가. 우리에겐 서로의 관점을 자유롭게 교환하면서 의견을 모아가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훈련은, 선배들이 후배들의 엉뚱한 의견에도 “좋은 생각이에요.”라고 웃으며 호응할 때 비로소 가능할 것 같다.

더 나은 토론을 위해 내가 주체적으로 기여하고자 하는 책임감과,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따뜻하게 격려하는 문화가 뒷받침될 때, 우리의 논의가 보다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민창욱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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