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법조광장

행정의 현대화와 행정법개혁을 위한 행정기본법 제정

165224.JPG

Ⅰ. 처음에 - 법제도는 누구를 위하여 존재해야 하는가? 

법제처가 법치행정을 완성하고 국민 권리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행정기본법」 제정 계획을 2019.7.2. 국무회의에서 보고한 것을 시발로 현재 국회에 입법안이 제출되어 있다. 국가법령 4,786개 중 4,400여건(92%) 이상이 행정법령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민사·형사·상사 등의 분야와는 달리 법집행의 원칙이나 기준이 되는 기본법이 없는 상황에서 핵심적 내용이 판례와 이론에 맡겨져 있는 실정이다. 가령 독일 행정절차법이 조건, 기한, 부담 등의 개별 부관을 정의하면서, 우리 교과서에 수록된 주요 내용을 고스란히 규정한 것(동법 제36조)과 비교하면, 우리는 개별법에서 단지 (부관으로서의 광의의) 조건부과만을 규정할 뿐이다. 어떤 부관을 어떻게 부과하여야 할지 그 내용적 한계와 시간적 한계는 어떠한지와 같은 법적으로 중요한 물음을 전적으로 판례와 문헌에 의거하여 판단내릴 수밖에 없다. 행정법집행의 기본 메커니즘을 담은 행정기본법」 제정을 둘러싸고 그동안 여러 주장이 분분하였지만, 세 차례(세종, 광주, 부산)의 공청회를 통해 학계의 경우 학자들의 학문적 소신에서 찬반양론이 있었지만, 실무계는 물론, 행정현장과 일반국민의 경우 이구동성으로 제정에 대한 높은 기대감을 나타내었다. 심지어 행정법령을 직접 집행하는 행정일선에서는 독일 행정절차법과 비교해서 내용적으로 풍부하지 못하다는 따끔한 질책도 있었다. 법집행의 구체적인 메커니즘의 부재는 종종 법집행의 난맥을 낳는데, 그로 인한 부정적 결과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귀착된다. 법제도는 과연 누구를 위하여 존재해야 하는가?


Ⅱ. 지금 왜 행정기본법이 필요한가? - 민주적 법치국가원리의 구현

법치국가는 법과 합리성을 통해서, 자신의 활동을 사전엔 예상가능하게, 사후엔 통제가능하게 만든다. 국민주권의 시대에 민주적 정당성은 선출에 그치지 않고, 공익실현과 같은 실체적 정당성에까지 확대된다. 행정법은 공익을 실현하는 행정작용을 규율하면서, 법치국가원리를 구체화한다. 그런데 원래 행정법제는 백성을 상대로 국왕의 공권력의 행사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국민을 공권력의 객체이자 대상으로 보는 관헌(관치)국가적 공법시스템은 여전하다. 이런 관헌(관치)국가적 공법시스템은 민주적 법치국가원리에 부합하지 않을 뿐 더러, 이미 심각한 기능부전을 노정하고 있다. 행정결정이 그 구조와 논거를 접근할 수 없게 불투명한(opaque) 방식으로 내려지기에, 행정작용의 방식이 국민에게는 블랙박스(Blackbox)에 흡사하다. 행정작용의 구체적인 매뉴얼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국민은 행정작용이 제대로 되는지를 알 수 없을뿐더러 나름의 문제제기도 할 수 없다. 국민 일반으로 하여금 법집행의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알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도 행정기본법은 실로 민주적 법치국가원리를 구현한다.

컴퓨터사용에서 출발점은 윈도우 등과 같은 운영체제(OS)인데, 행정기본법은 행정법제를 위한 일종의 운영체제와 같다. 역대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규제개혁이 강구되곤 하였지만, 행정작용의 기본 매뉴얼이 성문화되지 않은 이상, 실패로 귀착될 수밖에 없었다. 규제개혁의 차원에서도 행정기본법의 제정은 시급하다.


Ⅲ. 행정기본법이 꼭 있어야 하는가? - 행정판례와 행정소송이 행정법 전부가 아니다.

행정기본법의 제정에 참여하면서 종종 맞닥치는 물음이, 판례로 나름 해결이 되는데 굳이 행정작용의 기본원리와 핵심 내용을 성문화할 필요가 있느냐이다. 판례는 기본적으로 개별사건의 해결에 초점을 맞추기에, 전체 법집행의 메커니즘의 차원에서는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 판례와 문헌에서 확고히 뿌리내린 것을 성문화함으로써, 법학과 법제도 및 판례는 선순환적으로 발전한다. 행정작용의 메커니즘에 관한 명문의 규정과 해당 주석서나 설명서에 입각하여 나름의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는 비단 법치국가원리의 구체적인 실현만이 아니라, 법집행의 실효성 및 소모적인 분쟁의 사전억제의 측면에서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 독일 연방정부의 ‘더 좋은 규제 2016’ 보고서의 서문에서 메르켈 수상이 독일의 안정과 경제적 힘은 훌륭한 법적 틀과 신뢰할 수 있고 효율적인 행정이 그 바탕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들은 행정의 기본메뉴얼이자 행정법총칙에 해당하는 행정절차법(1976년 제정)을 바탕으로 행정법제를 부단히 현대화하였기에, 관료제 축소와 더 좋은 규제를 위한 프로젝트가 괄목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독일 행정절차법은 행정법적 쟁점과 관련한 그동안의 판례와 학문적 성과를 법전화를 통해 일단락한 것이다. 법집행의 구체적 메커니즘의 구축을 뒤로 물린 채 개별사건의 해결을 지향하는 판례에 전적으로 의거하는 이상, 행정법제의 발전은 매우 더디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법집행의 난맥에 따른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이 진다. 자칫 행정판례와 행정소송을 행정법의 전부로 오해할 우려도 있다(행정판례≠행정법).


Ⅳ. 행정기본법 제정 비판에 대한 반론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아쉬음과는 별개로, 행정기본법 제정 그 자체는 물론 개별 규정에 대해서 비판이 제기된다. 이들 내용이 교과서의 내용을 주루록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교과서와 판례에서 확립된 내용을 최소공약수의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성문화한 의미 역시 결코 소소하지 않다. 내용적으로도 획기적인 사항이 있는데, 가령 재판의 재심제도에 비견될 수 있는 처분의 재심사제도(안 제38조)는 제소기간이 경과하였더라도 사정변경에 따른 행정청의 재고를 공식적으로 요청할 수 있게 하였다. 행정기본법 제정의 白眉라 할 수 있다. 지면관계상 법안의 주요 내용은 약하는데, 미흡함에 대한 아쉬움은 당연하다. 개인적으로 취소와 철회에서 처분상대방에게 귀책사유가 없는 경우의 손실보상이 마련되지 않은 것은 매우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기본법의 제정으로 행정법제의 진화를 가속화시킬 베이스캠프가 마련된 것은 분명하다.

특히 안 제4조에 규정된 ‘적극행정의 추진’ 규정의 존재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비판이 제기된다: 자칫 소극행정을 이유로 공무원을 제재하기 위한 빌미가 될 수 있다, 현 정부의 ‘캐치프레이즈’에 가까운 정책적 구호에 가깝다, 적극행정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자세의 문제이다. 이런 비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반론을 제기하고자 한다. 행정법제의 운영체제로서의 행정기본법의 주된 내용은 제도와 메커니즘에 관한 것인데, 또 하나의 간과할 수 없는 요소가 인적 부분이다. 운영체제를 실제 운영하는 자의 자세와 태도에 따라 그 운영체제의 가동은 달라질 수 있다. 행정법령의 집행에서 공무원에 대한 요구사항을 특별히 고려한 점에서, 안 제4조에 규정된 ‘적극행정의 추진’은 나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국가공무원법 등은 공무원의 신분을 중심으로 권리와 의무 일반을 규정한 것이어서, 실행프로세스의 성격을 지니는 적극행정의 요구를 담을 수가 없다. 이미 적극행정과 관련된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이상, 그것은 단순히 자세의 문제가 아니고, 동시에 제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행정작용이 법치행정의 대전제에서 행해져야 하므로, 적극행정의 기치가 결코 탈법, 불법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 공무원을 옥죄는 효과는 생길 수가 없다. 적극행정의 문제는 결코 현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필자는 2010년에 ‘적극행정면책제도’를 주제로 한 감사원용역에 참여하였다.

대부분의 행정법규정이 “…를 하고자 하는 자는 … 허가를 얻어야 한다.”는 식으로 허가 등 여부를 행정청의 의무인지 재량인지 불분명하게 둠으로써, 국민은 행정처분이 이뤄지기만 기대할 뿐인 그저 수동적 존재에 불과하다. 법규정의 이런 구조를 타파하는 것이 발본적인 규제개혁인데,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이상, ‘적극행정의 추진’은 이런 잘못된 구조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한 기제로서 작동할 것이다. 과거 필자는 행정절차법에 이상의 행정기본법의 내용을 담아 그것을 행정일반법으로 진화시키려 하였지만, 행정절차의 본질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을 받았다. 행정기본법의 제정에 즈음하여, 그 내용이 독일의 경우 행정절차법에 있으며, 행정기본법이 행정절차법과의 관계에서 난맥을 유발한다는 지적은 수긍할 수 없다. 행정기본법은 행정법의 총칙의 역할을 하고, 행정절차법은 행정작용의 실체적 부분은 제외된 채 프로세스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Ⅴ. 맺으면서 - 이제 행정기본법 시즌2에 나서야

행정기본법의 제정이 느닷없이 현 정부에서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다. 돌이켜 보면, 필자가 '차기정부의 공법적 과제'의 차원에서 2012.10.27.에 개최된 공법학회·행정법학회·국가법학회의 공동학술대회에서 ’21세기 국가모델을 위한 가칭 행정기본법의 제정을 통한 행정법과 행정법제의 개혁‘을 발표하였고, 2016년에는 법제처과제의 연구책임자로서 ’ 21세기 국가모델을 위한 가칭 행정기본법의 제정을 위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그렇지만 행정법을 비롯한 각계 50여명의 전문가가 참여한 행정기본법 제정작업은 그동안 행정법학이 일구어온 행정법발전의 (중간)결실이다. 이미 행정환경과 공동체질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나게 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의 틀을 만연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새삼 어려움은 새로운 생각이 아니라, 오래된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있다는 것을(케인즈, 고용·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 서문) 실감한다. 법발전을 관철하며, 그 상관관계를 분석하고, 입법·행정·사법에서의 법실무에 대해 가능한 발전관점을 지적하는 것이 법학의 핵심임무이다(Schmidt-Aßmann, in: Liber Amicorum R. Wolfrum, Bd.2, 2012, S.2119). 이제 행정기본법 시즌2에 나서야 한다.



김중권 교수 (중앙대 로스쿨 교수·한국공법학회 고문)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