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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원] 미국에서는 코로나19 사태가 계약상 의무 면책이 가능한 '불가항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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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전 세계 기업들이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계약 불이행 및 계약 이행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이 아닐 수 없다. 계약 해지, 손해배상 청구, 인수합병 결렬, 해외 자회사의 경영난 등 올해 코로나19 사태와 직결되는 어려움을 직면하지 않은 사업체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불가항력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힘을 뜻한다. 불가항력 조항은 말 그대로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천재지변 또는 재난으로 인한 계약상 의무 불이행의 상황을 다루는 조항으로 많은 계약서의 표준 조항 중 하나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국내 기업들이 해외의 거래 상대방들로부터 이러한 불가항력 조항에 의거한 계약상 의무 불이행 통보를 받거나 반대로 통보를 하는 사례가 폭증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미국에서 불가항력 조항이 어떤 방식으로 적용되는지, 해외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적용 사례들이 있는지 살펴보고 국내 기업들이 미국에서 해당 이슈에 따른 법률 분쟁에서 직면하게 되는 실질적인 고려사항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1. 코로나19 사태는 '불가항력'일까?

미국법 기준에서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1) 계약의 문구 (2) 준거법 그리고 (3) 코로나19 사태가 해당 계약상 의무 이행에 미친 영향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미국 법원은 일반적으로 계약 당사자들의 의도를 중시하고 그에 반하는 판결을 하지 않기 위해 가급적 합의된 문구 자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상당수의 미국 주법(州法)은 불가항력 조항에 대해 제한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예컨대 뉴욕 주법의 경우 불가항력 조항이 과도하게 포괄적이라는 이유로 계약서에 구체적으로 열거된 재난 상황들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계약상 의무 면책이 가능하도록 정하고 있다. 즉 뉴욕 주에서는 전쟁·파업 등과 같이 계약상 구체적으로 열거된 경우에 한하여 불가항력에 따른 계약상 의무 불이행의 항변을 받아들인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모든 재난 상황을 불가항력으로 간주한다'는 의미의 포괄적인 문구가 계약서에 기재되어 있더라도 포괄적으로 불가항력 조항이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제한적인 태도를 취한다.

 

따라서 코로나19 사태의 경우 유행병이나 전염병 등을 뜻하는 'illness', 'pandemic', 'epidemic'과 같은 단어들의 계약서 기재 여부가 상당히 중요해진다. 전 세계적으로 불가항력 조항은 상사 계약서에 흔히 존재하지만 유행병이나 전염병 등을 뜻하는 단어들은 누락되는 경우가 많다. 다만 미국의 다른 주(州)에는 뉴욕 주보다 더 포괄적인 불가항력 조항의 적용을 인정하는 법률도 존재하므로 준거법에 대한 분석은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 사태가 계약상 의무 이행 가능성에 미친 구체적인 영향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계약서에 전염병이 불가항력에 해당하는 것으로 명시되었다 하더라도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당해 계약상 의무의 이행이 직접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불가능해졌다는 점과 그러한 상황을 예상할 수 없었다는 점이 증명되어야 한다. 계약상 의무 이행이 불가능해진 상황과 이행이 어려워진 상황은 다르다. 예컨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상당수의 미국 주(州)정부들은 봉쇄(lockdown) 정책을 시행했고 그로 인해 많은 사업체들이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었지만 단순히 그로 인해 계약상 의무 이행이 어려워졌다는 항변은 보다 구체적인 정황이 입증되지 않는 한 계약상 의무 이행이 불가능해진 상황에만 적용되는 '불가항력'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2. 일관성 없는 판례로 가중되는 혼란

코로나19 사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어서 현존하는 판례들이 어떤 방식으로 적용되어야 할지가 문제된다.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는 판결도 있을 수 있고 중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의 피해 확산 관련 뉴스로 인해 이번 사태가 예견 가능했다거나 또는 계약 당사자 입장에서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하는 노력은 충분히 가능했다는 판결도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전 세계의 각 법원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관성 없는 판결들이 코로나 시대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지난 5월 프랑스 파리 상사 법원은 코로나19 사태를 불가항력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 7월에 이루어진 항소심 판결 또한 원심을 지지했다. 지난 달 영국 런던의 상사 법원은 영국 금융행위관리국(Financial Conduct Authority)이 8개의 보험사를 상대로 제기한 시범 사건(test case)에서 코로나 사태로 피해를 본 사업체들이 환영할 만한 판결을 했다. 비록 모든 사업체가 코로나 사태로 인한 손실에 대해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의 판결은 아니었지만 구체적인 계약 문구에 따라 많은 사업체가 혜택을 누릴 가능성을 시사하는 판결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달 영국 대법원으로 상고가 진행되어 전 세계 법조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 6월 미국 미시간 주(州) 법원에서는 코로나로 인해 영업이 금지되었던 레스토랑이 어떠한 물리적 손실도 경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험금을 청구할 수 없다는 판결이 있었다. 레스토랑 측은 물리적으로 집기 등의 표면에 붙은 바이러스로 인해 물리적 손실을 입었다는 주장을 펼쳤지만 법원은 손으로 감지 가능한 물리적 피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험금 청구권을 부인하였다. 뉴욕 주(州) 법원 역시 기존의 제한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지난 5월 뉴욕 남부 연방법원은 코로나19로 인한 손해에 대해 불가항력 조항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사업체의 정상적 영업을 방해하는 물리적 손해가 존재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해당 법원은 뉴욕 주(州) 고등법원의 2002년 판례를 인용했다. 당시 브로드웨이의 한 공연장 주변에서 일어난 건설 재해로 인해 뉴욕 주(州) 정부가 해당 도로를 폐쇄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로 인해 해당 공연장은 정부의 행정명령에 따라 수일 동안 공연을 취소했음에도 당시 법원은 공연장에 직접적인 물리적 피해는 없었다는 이유로 보험사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속단하기엔 이르다. 지난 6월 미국 일리노이 북부 연방 파산법원은 코로나 사태로 인한 정부의 행정명령을 불가항력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 그로 인해 폐쇄된 사업체들의 임대료를 일부 면제하는 판결을 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 8월 미주리 서부 연방법원은 유사 소송들에 대한 보험사들의 소송 각하 신청을 기각하는 결정으로 코로나19로 영향 받은 사업체들의 기대를 높였다. 

 
이와 같이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사태에서 비롯된 분쟁이 폭증하는 가운데 유례없는 상황으로 인한 일관성 없는 법원의 판결과 그로 인한 혼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관련 판결들이 속속 이루어지는 가운데 최신 준거법과 계약 문구의 면밀한 분석 그리고 각 사업체가 처한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검토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3. 코로나19 시대의 현실적 소송 전략

한국과는 달리 미국 민사소송에는 증거 개시(Discovery)절차가 존재한다. 현대 사회의 민사소송에서는 증거가 되는 문서가 대부분 전자적 파일 형태로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전자 증거 개시(e-discovery)절차는 미국에서 민사 소송을 진행하는 데 있어 상당히 중요한 도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기업들과 거래하는 대부분의 국내 기업들은 이러한 절차에 대해 숙지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증거 개시 절차 초반에 불리한 위치에서 소송을 진행하게 되는 경우가 흔히 발생한다.

 

불가항력 조항에 관한 분쟁도 예외가 아니다. 소 제기를 고려하고 있지 않더라도 기업들은 이메일을 비롯한 실무자들의 커뮤니케이션 기록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실무자가 어떤 표현을 사용하여 어떤 의사를 전달했는지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분쟁에서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또 다른 중요한 고려 사항은 시간이다. 증거 개시와 같은 절차로 인해 미국에서의 법률 분쟁은 상당히 긴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높다. 민사 소송에서 긴 시간은 높은 법률 비용을 뜻하기도 한다. 상당수의 민사소송이 소 제기 이후 합의나 조정으로 마무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사건 초반부터 유리한 위치에서의 합의를 전략적으로 고려하는 경우도 흔히 존재한다. 따라서 기업들은 소송에서의 승리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초기에 소송의 목적에 따른 전략적인 고찰을 할 필요가 있다. 


시간은 코로나19 사태에 관한 분쟁에 있어서는 더욱 중요한 고려사항이 될 수 있다. 지난 2008년 금융 위기 시국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듯 코로나19 시국에서도 미국 전역에서 폭증하는 소 제기로 사법 시스템의 마비가 올 수 있고 법원들은 사건 수 증가에 따라 점차 강경한 태도로 많은 사건들을 서둘러 조정 등으로 마무리 지으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국내 기업들이 미국 법원에서 효과적으로 원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미국 각 지역의 최근 법원 동향과 판례를 숙지하고 있는 전문 법률가의 자문을 신속히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도희 해외통신원(Lee Anav Chung White Kim Ruger & Richter LLP)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