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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광장

국회법에 나오는 '번안'이란 용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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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안(飜案)'이라는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

우리 국회법 제91조는 '번안' 조항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 이 '번안'이라는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듯하다.


'번안’이라는 용어는 본래 "원작의 내용이나 줄거리는 그대로 두고 풍속, 인명, 지명 따위를 시대나 풍토에 맞게 바꾸어 고침, 원래의 모습을 살리면서 자기 나라에 맞게 고치거나 바꾸다"는 의미로 사용되며, 주로 '번안물'이나 '번안소설'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 '번안물'이란 '외국의 문학 작품이나 서적을 번역하되 원작의 줄거리나 사건은 그대로 두고 시대적 배경, 풍속, 인명, 지명 따위를 자기 나라 풍토에 맞게 바꾸어 펴낸 문학 작품이나 서적'의 의미를 가진 용어이다. 

 

한편 국회법에 나오는 '번안'이라는 용어는 "이미 '가결'한 의안에 대하여 그 의결을 무효로 하고 전과 다른 내용으로 번복하여 다시 의결하는 것"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여기에서 일반적 의미로 사용되는 '번안'과 국회법 제91조 '번안' 조항에서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는 '번안'은 그 의미가 상이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 '번안', '번안 동의'는 종교 용어?

그간 우리 사회에서 일본의 법률 용어를 좋은 말로 하면 '계수(繼受)', 솔직하게 말하자면 '모방'하는 경우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 '번안'이라는 용어는 일본의 국회법뿐만 아니라 (지적재산권과 관련된 '번안권'이란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 법률 용어로서도 전혀 사용되지 않고 있었다. 물론 중국의 전국인대, 혹은 법률 용어를 우리가 베낄 이유도 전혀 없지만, 중국에도 우리 국회법에 나오는 그러한 '번안'이라는 법률 용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필자는 '번안'이라는 용어를 추적하던 중 뜻밖에도 '교회 용어 사전'에서 이 용어를 발견하였다. '교회 용어 사전'에 의하면 '번안(reverse a former plan)'이란 "결의된 안건이지만 교회에 해롭거나 모순이 되거나 개인의 명예를 현저히 손상시킬 수 있는 사안에 대해 결의 내용을 다시 심의하는 것"으로 풀이되어 있었다. 국회법의 해당 조항에 나오는 '번안 동의’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교회 용어 사전'은 "한 번 의결된 의안을 다시 토의해서 결정을 뒤집는 동의"라고 설명하고 있다. 


결국 국회법에 나오는 '번안' 용어는 일본 법률, 혹은 중국 법률에서도 용례가 발견되지 않고 '번안'이라는 본래 한자어의 뜻에도 이에 해당되는 의미는 찾을 수 없다. 오직 '교회 용어'로서만 그 용례가 발견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 '번안'이란 용어가 특정 종교의 용어에 기원을 두고 있을 개연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이렇게 특정 종교의 용어를 국회법에서 사용한 것이라면 그것은 국가기관으로서의 국회의 위상에 부적절하다. 설사 종교 용어에 기원을 두지 않았더라도 현재 특정한 종교의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여 국회법의 '번안' 용어는 다른 용어로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더구나 '번안', '번안 동의'란 용어 자체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에는 지나치게 어려운 용어이다. 차제에 '수정안'이나 '개의(改議)' 혹은 '재론(再論)' 등의 용어로 바꾸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여겨진다.

 

 

소준섭 전 조사관 (국회도서관)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