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서초포럼

내 배에 총을 쏴라

165059.jpg

원고는 차력사였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야인 시절 경호원이었다고 했다. 60대 중반인 그는 1980년 5월 보안사에 끌려갔다가 엉뚱하게 서울역 광장에서 고성방가했다는 누명으로 구류 10일의 즉결심판을 받았고 그로 인해 15억원의 손해를 입었다면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소장은 비장했지만 증거는 차력도감과 즉결심판서뿐이었다. 예비판사 임관 첫해인 1998년의 일이다. 

 

청구원인도 손해액도 다 이상한데다 이미 18년 전의 일이라 원고가 이기기는 영 어려워 보였다. 신건합의 때 그런 의견을 냈는데, 재판장은 원고가 이제 와서 인지대 들여가며 소를 제기한 걸 보면 뭔가 억울한 것 같으니 일단 충분히 변론할 기회를 주는 게 옳다고 했다.

 

원고는 증인 두 명을 신청했다. 서울역에서 고성방가한 적이 없는데도 억울하게 구류당했다는 점에 관한 증인과, 그로 인해 15억원의 손해를 입었다는 점에 관한 증인이었다. 둘 다 채택됐다. 

 

증인신문기일엔 손해액에 관한 증인만 출석했다. 긴 파마머리에 빨간 스카프를 맨 노신사였다. 원고와 증인의 문답은 이랬다. "증인의 직업은 무엇인지요?" "시인, 극작가, 영화감독입니다." "증인은 원고를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당시 초인적인 능력자를 주연으로 액션 영화를 찍으려고 계획 중이었는데, 원고가 차력술의 대가여서 총을 쏴도 총알이 배를 뚫지 못할 정도라고 하기에 주연감으로 소개받았습니다." "그 영화의 제목은요?" "내 배에 총을 쏴라 원투쓰리입니다." 재판장이 급히 개입신문을 했다. "원투쓰리요?" "대부 원투쓰리처럼 3부작이란 말씀입니다."

 

터져나오는 웃음을 필사적으로 참는 가운데, 신문은 진지하게 이어졌다. 요컨대 증인이 원고를 주연으로 영화를 찍었으면 대성공을 거두었을 텐데, 원고가 구류를 당하는 바람에 영화 제작이 무산되어 엄청난 손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날 원고는 장시간 묻고 싶은 걸 다 물었다. 다음 기일에 다른 증인은 결국 안 나왔지만, 원고는 증인신청을 철회하고 화려한 최후변론을 원 없이 펼쳤다. 청구가 기각됐지만 원고는 항소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a day in the court'라고 하여 당사자의 법정변론권을 보장하는 것을 적법절차의 핵심으로 본다. 그 사건 원고도 하고 싶은 말을 다 했기에 판결에 승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법원 시절을 돌아보면 그 사건은 특별한 경우였고, 당사자의 말을 찬찬히 들어 주기보다는 사건 처리에 급급할 때가 많았다. 

 

당사자의 억울함을 풀어 주려면 충분한 변론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판사에게 여유가 있어야 하고, 그 여유시간을 사건에 쏟아 부을 사명감도 있어야 한다. 여유가 없으면 쫓기듯 사건을 처리하게 되고, 사명감이 없으면 웰빙 판사가 된다. 여유와 사명감은 마음먹기나 훈계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에서 나온다. 여유가 있으려면 법관이 증원되어야 하고, 사명감이 생기려면 열심히 일한 판사에게 합당한 인정과 보상이 따라야 한다. 지금 법원은 그런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가? 갖추려는 노력은 하고 있는가?

 

 

한애라 교수 (성균관대 로스쿨)

리걸에듀

관련 법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