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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소송제 앞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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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올해 9월 집단소송제,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한 입법 예고를 함에 따라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올해 10월 12일 이에 대해 반대하는 취지의 의견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반대 논거를 정리하자면, 1. 소송을 부추기는 사회가 될 것 2. 기업의 소송 방어 비용 지출이 증가하게 됨에 따라 신규 일자리 창출과 미래 먹거리 산업 투자에 쓰일 돈이 줄어들 것 3. 소비자(피해자)들이 얻는 이익은 적은데 변호사가 얻는 이익이 클 것,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전경련의 위 주장에 대해 하나씩 살펴본다. 먼저, “소송을 부추긴다.”는 말이 구체적으로 어떤 뜻일까? “피해자도 없고 피해도 없는데 억지로 피해자와 피해를 만들어 내어 소송을 창출한다.”는 뜻인가, 아니면 “피해자도 있고 피해도 있는데 피해자가 그냥 참고 소송하지 않는 것을 변호사가 설득해서 소송을 창출한다.”는 뜻인가. 전자의 경우라면 소송사기다. 사기죄로 형사처벌의 대상이다. 존재하지 않는 사실관계를 변호사가 만들어내어 소송을 하는 경우를 들어본 적 있는가. 상상해보자면 이런 상황일 것이다. ‘변호사 A가 뜬금없이 옆집 이웃에게 가서, “당신, 실제로는 아무 일도 없었겠지만 오늘부터 삼성전자로부터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됩시다. 내가 소송대리인이 되어 사건기록을 조작 할 테니 당신은 피해자로서 배상금을 받고 그 일부를 나에게 수임료로 주시오. 당신의 삼성 갤럭시 핸드폰은 폭발한 적이 없지만, 폭발한 것처럼 해서 소송을 해봅시다.” 라고 하는 경우’일 것이다. 변호사는 판타지소설 작가가 아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경우를 전경련이 근거로 상정한 게 아니라면 아마도 후자의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피해는 있으나 배상을 받지 못한 사람이 소송을 할 의지가 없는데 그를 설득시켜 소송을 하게끔 하는 것은 잘못인가? 크든 작든 손해가 있는데 그것을 배상 받고 싶지 않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일상의 모든 손해에 대해 다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 것은 소송이 ‘너무나 먼 나라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법원은 너무 낯설고, 소송은 복잡하고 전문적 분야이며, 시간과 품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손해액이 크다면 이러한 장애를 감수하고서라도 소송을 하겠지만 피해액이 소액이라면 섣불리 소송을 하겠다고 생각하기가 힘들다. 막말로 소송하느라 들이는 시간과 경제적 비용이 배상액보다 더 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신사에서 실수로 혹은 고의로 당신의 개인정보를 타 업체에게 제공하였다고 해보자. 개인정보 유출로 광고 전화를 자꾸 받게 된 당신은 기분이 매우 나쁘지만, 명백한 피해액을 산출하기는 힘들다. 통신사에 전화를 걸어 따져보았지만 힘없는 상담원의 사과만 받을 뿐, 달리 보상 받은 것도 없다. 이럴 때 피해자 개개인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혼자서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할 것인가. 아니면 청와대 국민청원을 할 것인가, 상담원에게 분풀이를 할 것인가. 실제 사건이다. 2009년 sk브로드밴드가 이용자들의 개인정보를 동의 없이 타 업체에 제공하였다는 이유로 이용자 2500여명이 집단소송을 제기하였고 그 결과 법원 판결에 의해 10만원 혹은 20만원 씩 배상받은 일이 있다. 당시 sk브로드밴드는 이용자들의 개인정보를 무단 제공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인 배상을 하지 않았고 결국 집단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하게 되었다. 전경련에게 묻고 싶다. 위 소송은 나쁜 소송인가?

둘째, “소송비용 증가로 기업에게 부담이 되어 일자리 창출 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근거는 또 무엇인가. “우리(대기업)한테 집단소송을 하면 결국 너희(국민)만 손해야~”라는 말을 품위 있게 돌려 말한 것으로 들리는 것은 필자만의 착각인가.

애초에 손해도 없고 피해도 없으면 집단소송이든 개인 소송이든 소송이 있을 수가 없다. 한발 물러나서, 기업이 본의 아니게 고객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그것을 자발적으로 배상해주면 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거창하고 숭고한 담론을 끌고 올 필요도 없다. 그저 자신이 저지른 일에 스스로 책임지는, 7살 어린이도 아는 당연하고 옳은 이치를 기업에게 이행하라는 것뿐이다. 피해자들의 피해를 외면하며 발전하는 기업은 국민들이 원치 않는다. 그 기업이 뿌리는 열매 역시 국민이 거부할 것이다. 정의롭지 않은 돈으로 창출되는 일자리라면 좀 줄어도 좋다.

셋째로, 변호사만 배 불리는 제도인가. 집단소송제가 시행되면 기존에는 생존을 위해 대기업과 가해자들을 변론하던 변호사들이 이제는 수임료 없는 피해자(소비자)를 위해 변론할 수 있게 된다. 그 동안은 대기업의 반대편에 서서, 힘없는 약자들을 대변하는 변호사는 언제나 배가 고플 수밖에 없었다. 체불임금 100만원을 받겠다고 농성하고 단식하고 투쟁하는 사람들을 변론하며 어찌 수임료를 받을 수가 있겠는가. 공익을 위하는 변호사는 언제나 배가 고플 수밖에 없었고, 변호사에게 공익과 굶주림은 언제나 세트로 움직이는 존재였다. 그런데 공익과 굶주림이 꼭 함께 가야 할 필요가 있는가. 생명을 위해 헌신하는 외과 의사의 처우를 개선해주어야 하는 것과 공익을 위해 약자를 대변하는 변호사의 수익을 개선해주는 것이 전혀 다른 맥락일까. 대기업에 비하면 한낱 ‘개미’에 불과한 변호사들을 악마와 같은 존재로 둔갑시켜 이득을 얻는 집단은 과연 누구일까. 집단소송의 본질은 거대기업에 대해 개인이 대항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무기를 준다는 데에 있다.

속칭 ‘디젤 게이트’ 사건 당시 미국이나 독일과 달리 한국은 집단소송제도가 없기에 폭스바겐이 차별적인 배상을 한 사례가 있다. 간단히 말해 한국만 ‘호갱(호구+고객을 합성한 신조어)’이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 집단소송제를 필요로 했던 치명적인 사건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우리 국민들이 거대기업 앞에서도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이성진 군법무관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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