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서초포럼

# 테스 형

164969.jpg

추석 연휴, 최고의 핫 이슈는 단연 KBS2 TV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단독 콘서트였다. 코로나 여파로 직접 관중을 앞에 두지 않은 채 콘서트를 가지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시청률 29%를 기록하였다고 하고, 정치적 의도 여부를 떠나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는, 역사적으로 타당하다고 보이는 그의 말 한 마디에 여야 정치인들 간에 아전인수식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으니, 가히 가황(歌皇)이라 불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노래를 통하여 오늘 우리 앞에 '테스 형'으로 소환된 소크라테스. 2500년의 시간을 건너 뛰어 오늘의 우리에게 소크라테스는 어떤 의미를 갖는 사람인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던 참전용사 출신 소크라테스는 아테네로 귀환한 이후 철학적 토론을 벌이며 정의와 충성, 사랑과 같은 개념의 본질을 묻고 또 묻는 데 시간을 보냈었다. 소크라테스 앞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근거없는 것인지 깨닫게된다. "네 자신을 알라"는 말을 권력층이 좋아할 수 없음은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권력자들은 소크라테스를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국가가 인정한 신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발한다. 권력자들이 원하는 것은 침묵이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침묵보다는 죽음을 택한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사형의 길로 가는 재판정에서 소크라테스가 스스로 자신의 무죄를 변론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변론으로서는 실패한 변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변론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던져 주는 강렬한 메시지는 그의 변론이 실패한 변론이 아님을 말해 준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피하는 것보다 불의를 피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고 했다. 정의보다는 불의가 판을 치고, 정의와 불의의 경계조차 모호한 가운데 정의가 아닌 것이 없고 불의가 아닌 것도 없는 지금, 소크라테스가 변론을 한다면 어떻게 변론을 했을까?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무지한 것이므로 알지도 못하는 것들에 대해 안다고 하지 말라고 하였을까? 

 

변호사로서의 많은 변론 가운데 정말 내가 알면서 하는 변론은 얼마나 있는지, 진리가 무엇인지 스스로 물으면서 행하는 변론은 또 있는지 자문한다면 답을 할 수 있을까? 코로나가 비상상황이 아니라 일상상황이 되고, '우리'가 아닌 '나와 너'가 되어 버린 지금, 우리가 알던 진리에 대하여 근본적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에 오늘날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알던 기존의 모든 지식과 개념들에 대하여 그 본질을 묻고 또 물어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자유에 대하여, 진리에 대하여, 본질에 대하여 묻지 않았기에 세상이 힘든 것은 아닐까?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무어라고 할까? 만약 소크라테스가 지금 세상을 위해 변론을 한다면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어떻게 쓰여질까? 문득 궁금해진다.

 

 

이상철 변호사 (법무법인 태평양)

리걸에듀

관련 법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