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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와 변호사, 원래 같은 민족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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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개발자가 되어 컴퓨터 프로그램을 코딩해 본 적이 있다. 어떤 기능에 대한 경우의 수를 빠뜨리지 않고 정리해서 논리적 구조에 따라 목차를 만들고, 문서와 첨부 문서를 작성하고, 형식을 다듬고 문서끼리 잘 연결되어 있는지 상호참조는 잘 되어 있는지 점검한다. 그런데 왠지 익숙한 일이다. 생각해 보니 변호사가 계약서를 작성할 때와 너무도 닮아 있다.

 

개발자가 변수를 정의하고 함수로 결과를 리턴한다면, 변호사도 계약서를 쓸 때 먼저 용어를 정의하고 요건과 효과를 이어 놓은 조항을 이어서 작성한다. 변수와 정의는 중요하다. 만약 계약의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기능을 넣은 조항에 이용할 '천재지변'이라는 변수를 정의하면서 '홍수'를 포함시키지 않았다면 '홍수'라는 이벤트가 발생해도 효과는 그대로 발생한다. 

 

개발자들은 논리적으로 깔끔하고 잘 정리된 코드, 친절한 주석이 달린 코드를 서로 칭찬한다. 변호사들도 밤새도록 검토하여 정합성이 완벽하고 상호참조에 오류가 없는 계약서나 논리가 완벽하고 문장이 유려한 훌륭한 서면을 칭송한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고객님들은 관심이 없다. 고객님은 중복 코드가 많아도 기능이 잘 돌아가기만 하면 되고 서면의 문장이 별로고 논리 모순이 있어도 소송에서 이기면 그만이다.

 

이런 고객님이 "이거 하나만 바꿔 주세요. 간단하잖아요?"라고 요청하면 개발자나 변호사나 모두 억장이 무너진다. 수십장 짜리 계약서를 몇 날 며칠을 걸려 완성해 놨는데 계약 체결 전날 거래 구조가 '조금' 바뀌니 빨리 계약서를 수정해 달라는 요청, 수만줄짜리 코드를 리팩토링까지 해서 잘 정리해 놨는데 오픈 베타 출시 전주에 기획이 '약간' 바뀌는 대참사가 벌어지면 둘 다 눈 앞이 하얘진다.

 

이렇게 코딩을 조금 알게 되면서 개발자들과의 기묘한 동지의식을 갖게 되던 그 때, 우연히 눈에 들어온 이 단어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Code of Hammurabi (함무라비 법전)'. 코드? 코드! 뭐가 원래 뜻인가 황급히 찾아본 네이버 영한사전 'code'의 세 번째 뜻은 컴퓨터 코드, 다섯 번째 뜻은 법을 의미하는 코드. 변호사 의문의 1패. 어쨌든 개발자와 변호사, 원래 같은 민족이었구나.

 

 

천준범 변호사 (법무법인 세움)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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