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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응답 혹은 침묵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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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준비를 위해 저작권법 교과서 중 음악저작물 부분을 오랜만에 들춰보다가 '舞音저작물'에 대한 오래 전 사례를 다시 접하게 되었다. 음악가 존케이지가 연주회장에서 우연히 들리는 관중들의 작은 소음, 대기 속 잡음 등을 녹음하여 '4분 33초'라는 제목의 곡을 발표하였는데 이후 영국의 한 그룹이 1분 동안 연주하지 않는 신곡을 발표하자 존케이지의 유산을 관리하던 재단이 저작권 침해를 주장했던 사안이다.

 

그런데 '4분 33초'와 같이 상대적으로 긴 시간 동안 인위적으로 아무런 소리도 추가하지 않은 작품은 물론이고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짧은 순간 혹은 잠깐 동안의 침묵은 경우에 따라서는 엄청난 의미를 가지므로 그 순간에 대하여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그 의미를 곱씹어 보아야 하며, 이는 소송의 진행 과정에서는 더욱 그렇다.

 

변론 과정에서 대리인의 구두 변론에 재판부가 잠시 동안 아무 진행도 하지 않는다든가 재판부의 질문에 대해 당사자나 대리인이 곧바로 답변을 하지 못하는 경우, 증인이 증인신문 전에 선서를 함에 있어 잠시라도 머뭇거림이 있는 경우 이러한 답변을 기다리고 있거나 관찰하고 있던 대리인은 무응답 내지 침묵을 신속하게 알아채고 그에 따라 향후 달라질 상황에 대하여 예상하여 대응방안을 정해야 한다. 무응답 내지 침묵의 복잡하고도 다양한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고 상대방의 약점이나 재판부의 고민을 잘 잡아내는 것이 소송에서 좋은 결과에 더 다가갈 수 있는, 필자에게도 여전히 연마가 필요한 변호사의 능력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청소부 밥'에서 밥 아저씨의 조언을 듣는 회사 대표는 직원들에게 주요 거래처와의 업무가 가져오는 좋은 점에 대하여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직원들의 대부분은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고, 회사 대표는 주요 거래처와의 업무가 직원들에 훨씬 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 누군가의 질문에 대한 무응답이나 찰나의 침묵은 명시적인 거절보다 훨씬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그 원인에 대한 보다 깊은 고민 또는 관찰이 필요하다는 점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 같다.

 

 

이용민 변호사 (법무법인 율촌)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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