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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오지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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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살 아들은 정의감이 투철합니다. 남다른 정의감으로 가족부터 지나가던 사람까지 사사건건 참견입니다. 길에 떨어진 쓰레기 하나에도 분개합니다. 그러니 조카들이 모이는 명절은 늘 극도의 긴장입니다. 형, 동생 구별 없이 사촌들의 작은 잘못 하나, 저와 다른 습관 하나도 용납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모든 분란을 무마하기 위해서 저는 조카들 용돈을 두둑이 준비합니다.

 

이번 명절도 그렇게 무마하고 나서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남이야 뭘 하든 신경 말고 너나 잘해라. 사람마다 옳다고 생각하는 게 다르다. 그러니 네 생각을 강요하지 마라. 네가 하는 것은 오지랖이다." 그러자 아들이 반격합니다. "그러면 만날 남들 잘했다, 못했다 재판하고 벌주는 아빠가 나보다 더한 오지랖이네. 자기는 오지랖 하면서 왜 나한테만 못하게 해!" 순간 정적이 흐릅니다. 한참 만에 유치찬란한 우격다짐으로 아들의 입을 막습니다. "그게 내 직업이야. 억울하면 너도 판사 해라." 이쯤 되면 누가 누구를 훈계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두 남자를 한심하게 쳐다보던 아내가 아들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어찌 보면 판사가 하는 일 모두가 오지랖입니다. 사건은 죄다 남의 일입니다. '남의 제사에 배 놔라 감 놔라' 하는 격입니다. 물론 의미 있는 일이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지만, 세상일에 간섭 말고 내 할 도리나 하자는 제 소신과는 배치되는 일입니다. 매양 남의 일은 살피면서도 정작 제 속내는 들여다보지 못하고 지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껍데기 같은 인간이 되고 말았다는 부끄러움도 생깁니다. 

 

남의 일에 끼어들어 누가 옳다, 그르다 하는 게 어쩔 수 없는 직업이지만, 내 나름의 원칙은 있습니다. 첫째, 최대한 보통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나는 이미 구체적인 개인이지만 보통의 사람들, 평균적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합니다. 법정에는 보이지 않는 피해자도 생각합니다. 둘째, 내 가치관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지혜로워서 판사가 된 게 아닙니다. 헌법과 법률을 해석해서 사건에 적용할 수 있는 작은 재주뿐입니다. 셋째, 어떤 경우에도 당사자를 도덕적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내 윤리의 편협함과 삐딱함을 늘 경계합니다. 오지랖이 판사로서 피할 수 없다면, 늘 경계하고 깨어있을 일입니다.

 

 

김태균 판사 (수원지법)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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