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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항소 없는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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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재판'이라는 것이 당사자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는데다가, 법원이 공정하게 재판을 진행하더라도 패소를 하면 그 판결에 불만을 가지고 불복하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형사소송에서 무죄를 주장하는 피고인이 유죄판결을 받고도 순순히 수긍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를 경험한 적이 있다. 웹하드사업자로서 저작권법위반 및 음란물유포의 각 방조죄로 기소된 사안에서, 피고인은 불법콘텐츠를 차단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이유로 무죄를 주장하였다. 뻔한 변명인가 했지만 속사정을 살펴보니, 법을 준수하고 권리자와 상생하는 '선한 웹하드 사업자'가 되겠다고 하면서 불법콘텐츠를 차단하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하였고, 실제 무죄판결 및 불기소처분을 받은 전력도 몇 차례 있었다. 하지만 웹하드에 대한 시각이 부정적으로 기울면서 이러한 사업자에 대한 면책은 거의 인정되지 않게 되었는데, 이 피고인도 그러한 상황에서 기소가 되었다. 피고인은 무죄 주장을 굽히지 않았는데, 재판부가 몇 번 바뀌는 바람에 새로운 재판부가 재판부 변경 전의 주장과 입증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우려를 하고 있었다.

 

새 재판부는 피고인의 무죄 주장을 진지하게 청취하였으며, 피고인이 불법콘텐츠를 차단하기 위해 실시한 기술과 조치를 설명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정확히 이해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구체적으로 특정하여 질의하였다. 나아가 무죄판결을 받기 위해 필요한 증거를 구체적으로 특정하여 이를 제출할 것을 설명해주기도 하였다. 재판부는 여러 기일을 열어 피고인이 주장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피고인의 주장과 증거도 꼼꼼히 심리하였다.

 

피고인은 재판부의 이러한 태도에 무죄판결을 기대하였지만, 재판부는 결국 피고인에 대하여 징역형(집행유예)의 유죄판결을 선고하였다. 그런데 피고인은 항소를 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 이유를 묻자 피고인은 "지금까지 우리 항변을 이렇게 열심히 들어준 재판부는 없었다. 대부분의 경찰, 검찰, 법원은 웹하드라고 하여 우리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아니한 채 판단하였다. 그런데 이 재판에서는 우리가 주장할 수 있는 것을 대부분 다하였고 재판부는 어려운 기술 설명까지도 정확히 이해하려고 하였다. 판결문에는 (판단은 달리했지만) 우리 주장을 대부분 반영해주었다(정상참작 부분). 무죄가 아니어서 아쉽지만 할 만큼 했다"고 답변하였다. 사실 항소를 하면 벌금형으로 감형될 가능성도 있었고, 설령 원심이 유지되더라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기존 사업을 계속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항소하지 않았다. 

 

모든 재판에서 이 같이 상소가 제기되지 않아야 바람직한 판결이라고 단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 재판이 진행되는가에 따라 소송당사자에게 법관의 진심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사법불신에 대한 우려가 제기될 때가 있는데, 변호사는 의뢰인을 위해 성심껏 소송대리(또는 변호)를 하고 판사는 공정한 재판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항소 없는 재판을 보는 것도 그리 낯선 일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조정욱 변호사 (법무법인 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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