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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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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인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채무를 조정하고 회사를 살리는 절차를 '회생'이라고 하는데, 이때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을 관리인이라고 합니다. 보통 대표이사가 관리인이 됩니다. 법원에 있으면서 많은 관리인을 봤습니다. 그런데 법원에서 본 관리인들 대부분은 쭈뼛쭈뼛하고, 조리있게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질문을 이해 못 해 답답한 적도 많았습니다. 사업계획은 경영에 무지한 제가 보기에도 판타지 소설 같았던 적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지금은 사정이 어렵다고 해도 한 회사의 대표이고,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의 직원을 책임지는 사람인데…'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회사 현장에서 관리인을 만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사람의 눈빛부터 다릅니다. 눈빛은 반짝거리고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가 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그 사람을 신뢰하고 금방 뭔가 하나 터트릴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하게 됩니다. 무엇이 사람을 그렇게 달라지게 하는가. 처음에는 법원과 절차에 적응하지 못한 관리인 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공간이었습니다.

 

공간이 사람을 지배합니다. 낯선 공간은 사람을 위축시킵니다. 창문 하나 없는 닫힌 곳에서 제대로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출입문을 등지고 막힌 벽을 보면서 속엣말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법정과 심문실은 꼭 그렇게 생겼습니다. 창문 하나 없습니다. 당사자는 출입문을 등지고 법대만 바라보고 앉습니다. 그곳에 내 편은 아무도 없습니다.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은커녕 난생처음 듣는 외국어 같은 법률용어로 재판하는 판사의 말을 쫓아가기도 쉽지 않습니다. 

 

판사인 저도 전출로 근무지를 옮기면 한 1년은 지나야 새 법원이 익숙하고 편안해집니다. 하물며 평생 처음으로 법정에 선 보통 사람의 속내야 말해 뭣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법원과 법정이 물리적으로도 좀 더 열린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법원 밖 현장으로 찾아갈 수 있는 여건이 더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재판은 결국 사람의 말을 들어봐야 하고, 내 속내는 내가 익숙한 곳에서 더 잘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간이 사람을 지배합니다.

 

 

김태균 판사 (수원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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