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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을 입은 법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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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군복을 입은 법조인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군복을 입지 않는 군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한 하루가 멀다 하고 근무태도를 지적 받던 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복무하는 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바로 군법무관이다. 필자가 속한 집단에 대한 이야기 이므로 필자의 설명을 변명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어찌되었든 필자는 군법무관에 대한 변(辯)을 해보고자 한다.


“법무관 간다고? 3년 동안 편하겠네.” 필자와 같이 단기 군법무관으로 복무를 하게 된 사람은 으레 듣는 말이다. 외부에선 종종 하는 말이지만 슬프게도 진실은 아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현재’에는 진실이 아니다. 과거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군법무관에게 일이 많지 않던 시절이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현직 군법무관 사이에서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마도 군 내, 혹은 사회 전체적으로 인권 의식이 높지 않던 시절은 그랬을 것이다. 지휘관의 명령에 대해 당부당을 다투지 않으니 불복도 없을 것이고 그에 대한 군법무관의 업무도 없었을 것이다. 징계에 대해 항고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니 항고사건도 지금보단 적었을 것이고, 전통적 특별권력관계론이 적용되던 시절엔 군인의 기본권조차 보장 받기 힘들던 시절이었으니 법무업무 자체가 많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권리의식이 높아져 경미한 형사사건에서도 국선변호인 선정을 당당하게 요구하는 시대이고, 웬만한 징계에는 항고 절차를 통해 권리 구제를 당당하게 도모하는 시대이다. 달마다 수 십 건씩 접수되는 국가배상 사건도 모두 군법무관이 담당함은 덤이다. 말이 길었다. 요컨대 ‘지금’의 군법무관들은 그리 편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내부에서 군법무관을 보는 시선도 마냥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같은 군인인데 왜 군복을 입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군법무관은 군대의 생리에 순응해서는 안 된다. 군대라는 조직에 친화적이어서는 안 된다. 군대는 태생적으로 상명하복의 위계질서가 엄격한 곳이고, 또 엄격해야만 하는 곳이다.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칼을 댄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고 보면 중위인 군법무관이 대령, 중령에 대한 징계조사를 하고, 징계심의를 하는 것은 군대라는 조직에는 어딘가 맞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단기)법무관은 중위 내지는 대위이고, 이들이 징계 절차를 진행한다. 이등병부터 장군까지 모든 군인이 그 대상이다. 만약 대령인 징계혐의자가 징계 조사를 위해 소환되었는데, 자기 앞에서 조사를 하는 사람이 자신보다 하급자인 중위이다? 그러면 징계심의자-징계혐의자의 관계보다 중위(하급자)-대령(상급자)의 관계가 더 부각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군법무관은 군복을 입지 않는다. 군복에는 계급장이 박혀있고, 그 계급장으로 인해 징계절차라는 업무에서의 관계가 아닌 계급에 의한 역학 관계가 절차의 공정성과 정의 실현이라는 가치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업무의 특성상 독립성을 기르기 위해서 군복을 입지 않는다는 것이다.

변명으로 시작했으나 마지막은 다짐으로 끝내려 한다. 소중한 우리 공동체를 위해 군인이 맡은 일은 나라를 지키는 것이다. 법률가가 맡은 일은 분쟁당사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법조인이자 군인인 군법무관이 맡아야 할 일은 곧 법정에서, 법으로써 나라를 지키는 것일 것이다. 가까이로는 군인들의 기강을 바로잡고 건강한 군대를 만들어 국방력을 강화시키고, 좀 더 나아가서는 국가를 피고로 한 소송에서 국가를 대변하여 국익을 지킬 수 있다. 군법무관의 임무는 그러하다. 나에게, 우리 군법무관들에게, 총 대신 법전으로 우리 공동체를 지킬 기회가 주어졌음에 감사하며 이 글을 마친다.


이성진 군법무관


리걸에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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