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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을 덮고 있는 베일을 벗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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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하나가 떠들면서 지하철 안을 헤집고 다녔다. 한낮의 여유를 즐기고 있던 승객들은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 아이의 아빠가 창밖을 응시할 뿐 전혀 제지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승객들이 수군수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아이의 아빠는 그저 창밖의 풍경에만 시선을 두고 있었다. 참다못한 한 승객이 아이 아빠에게 제지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제서야 지하철 안으로 시선을 옮긴 아이 아빠는 연신 죄송하다면서 머리를 조아렸다. 이어진 그의 말에 승객들 중 어느 누구도 아이 아빠를 탓하지 않게 되었다. "얼마 전에 아이 엄마가 죽었어요. 죄송합니다."

 

어느 에세이의 한 토막이다.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맥락과 상황이 중요하다. 법정에서 만나는 사건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상간녀 A가 유부남 B를 상대로 구상금을 청구한 사건이 있었다. A가 B의 아내 C에게 손해배상을 하였으니 B의 책임비율만큼 돈을 토해내라는 주장이었다. 서로 바람을 피운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상대의 과실비율이 더 크다고 다투는 상황에서, 상대가 자신을 유혹하면서 보내온 알몸사진들을 증거로 제출하기 시작하였다. 민망한 증거조사가 계속되던 중 A가 C와 먼저 소송을 하였고 그 1차 소송과정에서 화해권고결정이 있었던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1차 소송기록을 받아보니 C는 B를 용서하였고 A의 책임비율에 해당하는 금액만을 지급받기로 한 사실도 확인되었다. A, B, C 세 사람 사이에 있었던 사건의 맥락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도 맥락을 찾고보면 충분히 이해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권리자로 보이던 사람도 맥락을 확인하고 보면 전혀 권리가 없는 사람임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소송은 어쩌면 맥락을 감추고자 하는 사람과 맥락을 드러내고자 하는 사람 사이의 싸움일지 모른다. 재판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맥락을 덮고 있는 베일을 벗겨낼 때 비로소 사건의 진상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법관은 당사자들이 글과 말로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마치 현미경을 들여다보듯 세밀하게 관찰하고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망원경을 꺼내들고 전체 맥락을 살피는 작업이 병행되어야 한다. 맥락을 잘못 짚으면, 예리한 분석 끝에 도달한 곳이 엉뚱한 곳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최종원 부장판사 (전주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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