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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민 알 권리 보장 위해 판결문 가독성 높여야

대법원은 2013년 1월 1일부터 판결서 인터넷열람 서비스를 통하여 '판결서 등에 나타난 정보 중에서 그대로 공개될 경우 개인의 사생활이 침해될 수 있는 사항'에 관하여 비실명화 처리를 한 후 판결서를 공개하고 있다. 전자 매체를 통한 정보의 전파와 활용이 나날이 증대되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정보의 보호가 중요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사생활 보호는 절대적인 권리가 아니며 국민의 알 권리 보장 등 다른 이익과의 비교 형량이 필요하다. 

 

법원의 판결서 비실명화 기준에 의하면 판결 이유에 등장하는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 개인정보는 영어 알파벳 대문자로 중복되지 않게 표기한다. 우리 사회 및 경제가 발전하고 복잡해짐에 따라 판결서는 날로 그 분량이 길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법원 판결이 잇달았는데, 그 사건들의 판결서는 각기 수백 쪽에 달한다. 그런데 이러한 판결서를 인터넷열람 서비스를 통하여 읽어보면, 그 내용을 이해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사안의 복잡성과 법리의 난해함은 별론으로 하고, 수백 쪽에 달하는 판결서에 등장하는 수많은 개인, 기업 및 기업 내 부서들까지 모두 비실명 처리됨으로써, 일반 국민 뿐만 아니라 법률전문가 조차도 판결서를 읽고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전임 대통령에 대한 법원 판결서(서울고법 2018노1087 판결) 일부를 보자. "…검사가 제출하는 증거들을 종합하더라도 V이 CB 등으로부터 AN, AO (AO, 이하 'AO'라 한다), AP (AP, 이하 'AP'라고 한다) 등에 대한 보험료 상당액을 수수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IE, 전 AGN 본부장 및 AGO 실장, 전 AGN 본부 재무팀장 및 AGO실 사장 AGQ, 전 YL 대표이사 AGR, 전 YL 경영지원실장 AGS은, 상호 및 순차로 공모하여…"라는 식으로 쓰여 있는데 이러한 비실명화 표시는 수백 쪽의 판결서 내에 수천 번 계속된다. 

 

우리나라는 그 어느 나라보다 앞서 인터넷을 통하여 국민이 판결서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고, 판결서의 공개 범위도 다른 나라에 비추어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이는 정보 공개를 통한 국민의 알 권리 보장 및 사법절차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보 공개는 공개되는 정보의 실효성이 담보되어야 하는데, 현재와 같이 가독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정도의 비실명화가 과연 그러한 취지에 부합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다른 국가의 판결서 공개 원칙을 살펴보면, 영미법계 국가는 실명 공개가 원칙이고, 같은 대륙법계 국가인 프랑스도 공개원칙 하에서 예외적으로 일부 민감한 사건에서 비실명 처리를 하고 있으며, 독일의 경우 비실명 처리를 원칙으로 하되, 현저하게 공지된 사건일 경우 오히려 실명 처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판결서의 공개는 정보의 공개를 통한 사회 투명성 제고 및 사법절차 공정성의 확보에 매우 긴요하고, 민주주의 발전 방향에도 부합한다. 현재의 판결서 비실명화 기준이 실효적인 정보 제공을 통한 국민의 알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고 있는지 재검토가 필요하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