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발언대

[발언대] 인사권과 제청권

163868.jpg

1. 헌정사의 부끄러운 모습

가.
우리나라는 해방 후 70여 년 동안 이룬 산업화와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아홉 차례의 개헌 과정에서 자유당 독재, 유신독재, 신군부 독재, 문민 독재라는 오명과 함께 대통령의 망명, 재임 중 피살, 본인이나 아들의 구속, 퇴임 후 자결, 탄핵 등의 현상이 말하듯이 대통령제의 권력 남용이 점철되었다. 권한 남용은 권력의 집중에서 비롯된다. 헌정사의 불운은 헌법이 나누어 놓은 권력마저 대통령 일인에게 집중해온 것이 하나의 원인이 된 측면이 있다.

나.
국회 동의를 얻어 임명된 국무총리(이하 ‘총리’로 약칭)에게 국무위원 및 행정각부의 장 임명제청권과 행정각부 통할권, 국무위원해임건의권 및 부서권(副署權)이 있는바, 이는 헌법이 총리에게 대통령의 권한 행사에 대한 견제적 기능을 부여한 것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은 법적 제한 없이 총리를 해임할 수 있는 점(헌법 제78조, 제86조 제1항)과 총리의 행정각부 통할권도 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명을 받아 통할하는 점 등을 강조하여 총리의 지위를 ‘대통령의 첫째가는 보좌기관’으로만 보았다(헌법재판소 1994. 4. 28. 선고 89헌마221 결정). 그리하여 헌법이 총리에게 부여한 권한 견제 기능은 거의 무시되고 총리직을 민심 수습용이나 대독총리로 활용함으로써 대통령의 권한을 성역화하는 데에 일조하는 역할만 했다. 총리의 대통령 권한 견제 기능의 핵심은 임명제청권이다. 그동안 총리는 이를 실질적으로 행사하지 못하고, 대통령이 임명대상자를 미리 선정하고 총리는 이에 맞추어 형식적인 제청을 하였다. 이처럼 합당한 반대 의견이나 대안 제시도 되지 못하는 형식적인 제청권은 헌법의 장식물에 불과하다.

  

법률가 총리 이회창은 행정각부 통할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려다 비법률가 대통령 김영삼으로부터 해임 압박을 받고 물러났다. 반면 비법률가 총리 이해찬은 법률가 대통령 노무현이 상식적으로 헌법 규정을 적용하면 명실상부한 ‘책임총리제’를 구현할 수 있다는 방침에 따라 총리로서 역할을 다한 것으로 평가받는다(김광선,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과 행정각부 통할권에 관한 연구” 중앙법학 6집 3호 18~20쪽 참조).

다.
총리의 국무위원과 행정각부의 장에 대한 임명제청권은 총리의 행정각부 통할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권력의 집중과 남용은 내부에 반대자나 반대 의견의 적극 주장자가 없을 때 생긴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거나 견제하기 위해서 마련된 임명제청권을 제청권자가 주도적으로 행사하지 못하고 임명권자가 선정한 대상자를 그대로 제청하는 것은 제청의 요식만을 갖춘 것일 뿐 권한 견제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 헌법과 법률이 정한 임명권과 제청권을 문리와 상식대로 해석하지 않고 임명권만 확장해석하여 ‘대통령’의 권한을 ‘제왕’의 권한으로 키워서는 아니 된다. 총리의 헌법상 권리가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좌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의 의지가 헌법이라는 제도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헌법 규정을 상식 수준으로 적용하면 책임총리제를 실현할 수 있다고 한 점은 헌법 수호의 책무가 있는 대통령(헌법 제66조 제2항)으로서 권한 분산이라는 헌법의 뜻을 가장 잘 지켰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헌법 준수 의지는 대법원의 2003. 7. 25.자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내규’로도 반영되어 대법관 임명제청은 대법원장이 주도하여 대상자를 공개적으로 선정하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헌법상 각 제청권자의 제청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하였지만, 총리의 국무위원 임명제청권 행사와 감사원장의 감사위원·사무총장 등 임명제청권 행사에 관하여는 이를 제도화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2. 임명권과 제청권에 관한 법률의 규정
가.
공무원에 대한 임면권(任免權)은 대통령에게 있다. 다만,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무원임면권을 행사해야 한다(헌법 제78조).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중 대통령이 임명권(任命權)을 행사할 때는 반드시 제청권자의 제청에 따라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나.
헌법 규정에 따르면, 대통령은 제청권자(총리, 감사원장, 대법원장)에 대하여 먼저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하고(헌법 제86조 제1항, 제98조 제2항, 제104조 제1항), 각 제청권자의 제청으로 해당 공무원을 임명하도록 규정한다. 즉, ①국무위원은 총리의 제청으로(헌법 제87조 제1항), ②행정각부의 장은 국무위원 중에서 총리의 제청으로(헌법 제94조), ③감사위원은 원장의 제청으로(헌법 제98조 제3항), ④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헌법 제104조 제2항) 각 임명하도록 규정한다.

헌법기관 구성에서 헌법이 국민의 직접 선거에 따라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를 직·간접으로 관여시킨 것은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여 헌법기관을 구성하겠다는 취지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임명으로 국민의 의사가 반영됨에도 다시 국회의 동의를 받게 한 것은, 국민의 의사 반영 취지보다는 대통령의 공무원 임명권에 대한 국회의 견제 장치로 보는 것이 옳다. 더구나 제청권자의 제청권은 국민의 의사 반영과는 무관하고 오직 대통령의 임명권을 견제하는 취지임이 분명하다.

한편, 헌법 제107조 제1항은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는 법원은 헌법재판소에 ‘제청’하여 그 심판에 의하여 재판한다.”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헌법재판소는 위헌법률심판의 심판권자이지만 법원의 제청이 없으면 심판절차를 진행할 수 없고, 헌법재판소가 직권으로 심판절차를 개시할 수도 없다.

다.
법률에도 제청이 있어야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예컨대, ①감사원의 사무총장과 고위감사공무원단, 4급 이상 공무원은 감사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면(任免)하고(감사원법 제18조 제1, 2항), ②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총리의 제청으로, 부위원장은 위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며(금융위원회법 제4조 제2항), ③공정거래위원회의 위원장과 부위원장은 총리의 제청으로, 기타 위원은 위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 또는 위촉하고(공정거래법 제37조 제2항), ④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부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하되, 검사의 보직 제청 시 법무부장관이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야 하며(검찰청법 제34조 제1항), ⑤경찰위원회 위원은 행정안전부장관의 제청으로 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며(경찰법 제6조 제1항), 경찰청장은 경찰위원회의 동의를 받아 행정안전부장관의 제청으로 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경찰법 제11조 제2항). ⑥그 외 국가공무원법 제10조 제1항과 제32조 제1항, 제2항은 소청심사위원회의 위원(위원장 포함)은 인사혁신처장의 제청으로 총리를 거쳐, 행정기관 소속 5급 이상 공무원과 고위공무원단 소속 공무원은 소속 장관의 제청으로 인사혁신처장과 협의를 거친 후 총리를 거쳐 각 대통령이 임용하되, 이 경우 대통령은 3급부터 5급까지의 공무원에 대한 임용권을 소속 장관에게 위임하고 있다.

라.
위에서 보듯이 제청권자의 제청에는 또 다른 절차를 부과한 것이 있는바, “검사의 보직 제청에 관한 검찰총장의 의견”은 본디 준사법기관인 검사의 직무가 사법절차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임기직인 검찰총장의 의견을 반영함으로써 검사의 신분보장과 수사의 독립성,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절차이다. 또한, “경찰청장 임명제청에 관한 경찰위원회의 동의”는 경찰청장은 사법경찰관에 대한 인사권과 지휘권을 무기로 사법경찰권 행사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민간 위원으로 구성된 경찰위원회의 동의를 받도록 함으로써 사법경찰권 행사의 독립성을 간접적이나마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즉, 경찰청장의 임명 제청권자와 검사 보직의 제청권자는 모두 정무직인 장관이라는 점에서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사법권 행사에 정치적 고려가 작용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취지이므로, 검찰총장의 의견과 경찰위원회의 동의는 형식적 요식 행위로 그쳐서는 아니 된다. 경찰청장이 이미 내정한 상태에서 경찰위원회가 소집되어 동의한다는 것은 ‘동의’와 ‘제청’ 절차를 밟도록 한 법률의 규정을 아예 무시하는 것이다.

또한, 검찰청법 제34조에는 원래 검사의 보직에 대하여 법무부장관이 제청 전에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규정이 없었는데, 참여정부 시절인 2004. 1. 20. 당시 국회 재석(在席) 의원 191명 만장일치의 찬성으로 검사의 보직에 대하여는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도록 개정하였다. 그리고 법무부장관은 검사의 보직을 제청할 때에는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는 이외에 검사에 대한 근무성적과 자질 평정을 위한 공정한 평정기준을 마련하여 그 평정기준에 따라 평정을 한 뒤 제청하여야 한다(검찰청법 제35조의2). 이는 모두 준사법기관인 검사의 신분보장과 수사의 전문성 및 정당한 사법권 행사를 보장하기 위한 절차이다. 개별검사의 업무 능력을 가장 잘 아는 검찰총장의 검사 보직에 관한 의견은 수사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므로 검찰총장의 의견이 반영되는 것이 검찰 조직의 구성원리에도 부합한다. 참여정부나 지금 정부처럼 법무부 문민화를 추구한다면 더욱 검찰총장의 의견을 반영하여야 한다. 참여정부는 법무부의 문민화와 함께 검찰청법을 개정하였던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창 수사 중인 검사에 대하여 전보 원칙에 따르지 않고 검찰총장의 의견과도 달리 보직을 변경함으로써 수사를 하지 못하게 하면 국가의 형사사법권 행사에 대한 침해가 될 것이다.


3. 임명제청권의 행사 방법
가.
대통령의 국무위원과 행정각부의 장 임명에 필요한 총리의 제청권 행사, 대통령의 감사위원이나 사무총장 등의 임명에 필요한 감사원장의 제청권 행사는 대부분 형식적으로 운영된 것이 관행이었다. 즉, 대통령이 임명대상자를 미리 선정한 후 제청권자로부터 단지 형식적인 절차상 요건으로서 제청받았는바, 이는 제청권자의 사후 동의나 양해 정도의 의미일 뿐이다. 그런데 1988. 7. 2. 당시 여소야대 정국에서 ‘정기승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이 부결되고, 이어 중립적인 인사로 평가받던 ‘이일규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이 가결되었는데, 이런 상황은 임명에 국회 동의가 필요한 대법관에 대하여도 대법원장의 임명제청권을 존중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
그렇다면, 헌법 해석상 대법원장의 임명제청권과 총리나 감사원장의 임명제청권을 달리 취급하는 것이 옳을까? 대법원장의 대법관 임명제청권은 유신헌법(제7차 개헌)부터 계속 행사하여 왔다(다만, 유신헌법에서는 대법원장 외 모든 법관에 대하여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였음). 2003년 이전에도 대법원장이 독자적으로 대법관 후보자를 지명 또는 선정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참여정부 시절인 2003. 7. 25. 사법개혁의 하나로 대법원에 “대법관제청 자문위원회 내규”가 신설되어 대법관 임명제청절차가 대법원장 주도 아래 공개적으로 진행됐고, 2012. 1. 1.부터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법원조직법 제41조의2)가 입법화되어 대법원장은 추천 내용을 존중하도록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장의 임명제청권이 실질적으로 행사되면, 국회나 대통령의 관여는 대법원장의 제청에 대한 추인의 성격이 강해져 대법원의 구성은 대법원장이 주도하게 되어 민주성 또는 대표성에 중대한 결함을 가진다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선정하여 국회의 동의를 받으므로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고,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국회의 동의라는 견제 장치가 있어 민주성이나 대표성도 반영되며,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법원의 전문성과 독립성 확보와 동시에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권의 남용을 억제한다는 데에 그 취지가 있으므로,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실질적으로 행사되어야 한다. 만약 제청권자가 제청대상자를 독자적으로 선정하지 않고, 임명권자가 요구하는 사람을 선정하여 제청하거나 임명권자가 선정한 사람을 제청한다면 그 제청은 요식에 불과하여 권력분립의 헌법 원칙에 위반된다.

다.
헌법 제107조 제1항에 따른 법원의 위헌법률심판제청이 없으면 헌법재판소는 위헌심판절차 자체를 개시할 수 없고, 직권으로 위헌법률심판을 할 수도 없으며, 헌법재판소가 법원에 특정 법률의 위헌심판을 제청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 헌법이 각 조항의 ‘제청’의 의미에 대하여 달리 규정하고 있지 않으니 임명제청에서도 대통령은 제청이 없으면 임명할 수 없고, 특정인을 임명 제청하라고 요구할 수 없다고 봐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위헌심판 제청은 사법절차이고, 나머지는 국가기관 구성을 위한 행정절차라고 구분하여 임명제청에서는 지금까지의 관행과 우리의 정부 형태가 원칙적 대통령제라는 점을 들어 양자를 달리 해석하는 견해가 있다. 또한, 제청 없이 한 대통령의 임명행위의 효력에 관하여 유효설(위헌이기는 하지만, 임명 자체가 무효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견해)과 무효설(형식적인 절차라고 하더라도 법 이론상 그 임명은 무효라는 견해)의 대립이 있다. 어느 설에 따르던 제청 없이 한 임명권 행사는 헌법위반에 해당한다. 그리고 제청은 실질적인 제청을 말하므로, ‘제청’의 의미를 각각의 헌법 조항에 따라 달리 해석하여 대통령이 국무위원이나 감사위원을 독자적으로 선정하고 제청권자는 이에 맞추어 형식적으로 제청하는 관행도 헌법위반이 될 것이다. 물론 제청권자가 임명권자의 의중을 존중하여 대상자를 선정하는 것과 대통령이 대상자를 선정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현재 대통령비서실(정부조직법 제14조)에 소속된 민정수석과 인사수석이 대통령의 뜻에 따라 임명대상자에 대한 선정과 검증작업을 수행하는 한 제청권자의 제청권 행사는 형식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라.
또한, 총리나 국무위원 모두 ‘국정’에 관하여 대통령을 보좌하지만(헌법 제86조 제2항 전단, 제87조 제2항 전단), 총리는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하므로(헌법 제87조 제2항 후단), 대통령의 명을 받아야 하는 행정각부 통할권에는 제청권이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 제청권도 ‘행정’의 하나라고 보고 대통령의 명에 따라 제청해야 한다면 헌법에 굳이 “국무총리의 제청으로”라는 규정을 둘 이유가 없다. 또한, 총리의 행정각부 통할권에 필요한 ‘대통령의 명’은 개개의 행정행위마다 발령되는 것이 아니라 총리의 헌법상 지위(정부의 제2인자)를 포괄적으로 표현한 규정으로 볼 수 있다는 점과 헌법이 순수한 대통령제에서 볼 수 없는 총리제를 가미한 것 자체가 총리가 제2인자로서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란 점에서도 총리의 제청권을 유명무실하게 하는 지금까지의 관행은 헌법에 위반될 소지가 아주 크다.

한편, 정부조직법 제19조에 따른 부총리 2명은 ‘총리가 특별히 위임하는 사무를 수행’하기 위한 정부조직으로서 기획재정부장관은 ‘경제정책’에 관하여, 교육부장관은 ‘교육, 사회 및 문화 정책’에 관하여 각각 ‘총리의 명을 받아’ 관계 중앙행정기관을 총괄, 조정하는바, 총리에게는 ‘경제정책과 교육, 사회, 문화 정책’에 관하여는 이를 독자적으로 수립하는 권한도 부여되어 있다. 이 규정은 헌법상 총리와 부총리는 임명직 공무원으로서 정파성이 옅은 직위라는 점에서 볼 때 경제, 교육, 사회 및 문화 정책이 정권에 따라 들쭉날쭉 바뀌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 우리 법제의 ‘총리와 2명의 부총리’는 조선 시대 왕권을 견제하기 위한 “의정부서사제(議政府署事制)”와 유사하다는 점에서도 제헌헌법 당시부터 계속 유지된 총리제는 분명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이다.

마.
감사원의 조직 소속은 대통령이지만,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에 있고, 감사원 소속 공무원의 임면(任免), 조직 및 예산에서 감사원의 독립성이 최대한 존중되어야 하는바(감사원법 제2조), 감사원장의 감사위원이나 사무총장 등에 대한 임명제청권의 독립성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어야 그 직무의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감사원장의 임명제청권도 대법관 임명제청권에 비하여 가볍게 취급할 수 없다.

관행은 제도, 즉 헌법과 법률의 규정을 어길 수 없다. 헌법은 대통령의 임명권 행사에 제청권이 선행되어야 함을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제청권을 단순히 형식적인 절차로서 끼워 넣기 절차로만 볼 수 없으므로, 각 제청권자의 제청권은 실질적으로 행사되어야 한다. 각 제청권자가 자체적으로 국무위원, 감사위원 후보추천위원회를 두고 각 제청권자의 책임 아래 능력과 자질을 검증하여 제청함이 옳다(김광선, 위의 글, 13쪽도 같은 취지). 임명대상자에 대한 제1차적 선정 권한이 각 제청권자에게 있는 이상 대통령비서실에 인사수석이나 민정수석이라는 조직은 필요하지 않거나 축소되어야 한다. 이미 존재하는 조직인 총리 소속의 인사혁신처나 감사원 사무처에 법원조직법 제41조의2와 같은 위원회를 두고 제청대상자 선정 과정을 공개하여 제청권자가 주도적으로 제청 업무를 수행할 필요가 있다.


4. 제청권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안의 의결정족수와 관련하여
가.
국회의 의결정족수는 “헌법 또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라고 되어 있다(헌법 제49조, 국회법 제109조). 현재 총리, 대법원장, 감사원장의 각 임명 동의에 대한 의결정족수에 관하여 헌법과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으므로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 의결이면 통과된다.

나.
그런데 대법원장은 대법관에 대한 임명제청권 이외에 헌법재판소 재판관 3인 지명권(헌법 제111조 제3항),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3인 지명권(헌법 제114조 제2항), 국가인권위원회 위원 3인 지명권(국가인권위원회법 제5조 제2항 제3호)을 갖는다. 


대통령의 대법원장 임명권은, 국회 동의라는 견제 장치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임명되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집권당이 다수당일 때에는 국회 동의는 실질적 견제 장치가 되지 못하고 대통령 단독으로 대법원장을 임명하는 것과 같게 된다. 대법원장 임명에 관한 이와 같은 현실에 따르면 대법관 임명제청(법원조직법 제41조의2 제6항은 추천위원회는 3배수 이상 추천하게 되어 있어 대법관도 대통령 의사에 따라 임명될 수 있다)과 대법원장 지명 몫인 각 3인의 위원도 대통령의 의사가 반영될 것이고, 결국 대통령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위원은 야당 추천 몫의 위원 1~2명 정도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있다. 대법원장이 지명권을 행사하는 기관은 독립성과 중립성을 존립 근거로 하는데도(지명권은 제청권보다 더욱 강력하다) 여대야소 정국 아래에서는 사실상 대통령의 의지대로 독립기관을 구성하게 됨으로써 헌법과 법률의 기관구성 논리에 어긋난다. 특히, 사법부 수장이 특정 정파의 의지만으로 임명되다 보니 정권 교체기마다 편향성, 중립성 시비가 일고 이는 재판에 대한 신뢰마저 흔드는 요인이 되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다.
따라서 대법원장의 임명에 야당 등 반대 정파의 의사도 반영되도록 하여 체제 중립적인 인사가 임명됨으로써(과거의 이일규 대법원장 임명처럼) 정치적으로 사법부를 흔들 소지를 방지할 필요가 아주 크다. 헌법 제49조는 법률로써도 가중의결정족수로 의결할 여지를 두고 있다. 즉, 국회의 대법원장 임명 동의에 재적의원 2/3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하게 되면 대법원 구성은 물론 헌법재판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직 구성상의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런 이치는 최고 감찰기구의 수장인 감사원장과 정부의 제2인자로서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동시에 그 권한을 견제하는 총리의 임명 동의에도 타당할 것이다. 체제 중립적인 감사원장이 제1차적으로 감사위원을 임명제청하고 대통령이 이를 존중함으로써 대통령비서실이나 검찰 등 이른바 권력기관에 대한 감찰이 제대로 되면 권한 남용으로 인한 문제점은 줄어든다.

대통령의 권한이 “제왕적”이어서 문젯거리가 되어 불운한 헌정사가 전개되었다면 헌법개정 이전에(아홉 차례의 헌법개정에도 여전히 ‘제왕적’인 대통령이 문제라면 헌법개정이 최선의 답은 아니다) 현행 헌법과 법률이 마련한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하는 장치를 상식 수준에서 먼저 시행해봐야 한다.

물론 제청권자의 임명에 국회의 가중다수결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제청권자가 임명권자의 의중을 존중하여 대상자를 선정함으로써 생기는 문제점은 임명된 사람이 공직자로서 지켜야 할 자세에 맡길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사람이 지키지 않으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고 제도를 무시할 수는 없다.


5. 맺으며

캐나다 맥마스터 대학교 송재윤 교수는 저서 “슬픈 중국”에서, 공직자가 청렴성과 사명감이 없으면 정부는 불신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전문성이 모자란 권력자는 행정착오와 정책실패를 초래하는바, 고위 관료의 임명에 도덕성과 전문성이 아니라 이념과 전문성이 양자택일의 기준이 됨으로써 전문성이 전혀 없는 사람이 정부의 요직을 죄다 차지하면 정부라는 범선은 작은 풍랑에도 난파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공직자, 특히 국가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고위공직자의 임명권 행사의 적절성은 나라의 발전과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 기본법인 헌법이 모든 공직자에 대한 임면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하면서도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서”만 행사하도록 규정한 것은 해당 기관이나 직무의 독립성, 중립성, 전문성, 효율성 등을 고려하여 도덕성과 자질은 물론 전문적인 능력을 갖춘 사람을 고루 등용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래 대통령의 권한에 속한 것이라도 이를 나누어야 할 것인데, 헌법이 나누도록 한 권한마저 대통령에게 집중시키는 헌법 해석은 옳지 못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법무부장관이 검사의 보직을 제청할 때에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도록 하는 규정이 신설되었고, 대법원에 대법관제청 자문위원회 내규가 신설되었으며, 대통령 스스로 국무총리에게 권한을 나누어 이른바 분권형 대통령제를 시도한 노력은 대통령의 헌법 수호 책무를 다하고자 하는 자세로써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만약 이러한 자세가 제도가 되어 실천되었다면 그 이후의 불운한 헌정사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구욱서 변호사(법무법인(유한) 다래)

 

미국변호사

관련 법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