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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작법자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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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의 진나라는 법가사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국가 체계를 법적으로 정비함으로써 부국강병을 이루고 결국은 천하를 통일하기에 이르렀다. 그와 같이 진나라 체계를 법적으로 정비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 자가 바로 상앙이다. 그러나 상앙은 그를 중용하였던 왕이 죽자 실각하여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상앙은 도망하는 과정에서 그가 만든 '성문은 아침이 되기 전까지는 열 수 없다'거나 '증명서가 없는 자를 재워주어서는 안 된다'는 법 때문에 고초를 겪었다. 여기서 자신이 만든 법에 자신이 해를 입는다는 뜻의 작법자폐(作法自斃)라는 말이 유래되었다. 상앙은 결국 잡혀 죽임을 당하였고, 그가 만든 연좌제에 따라 삼족이 멸해졌다.

 

현대에 이르러 법치주의는 국가 운용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근간이 되었다.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불특정 다수가 모여 이루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법의 제정과 시행이 필요하다는 점에 관하여 사회적 합치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일찍이 이러한 법치주의를 받아들여 확립한 상앙이 비참한 말로를 맞고 작법자폐라는 말을 남기게 된 것에 대해서는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법치주의 도입에 관한 사회적 합치는 인권 보호에 근거하고 있다. 법에 의하지 않는 경우 미리 정하여지지 않아 일관적이지 않은 기준이나 투명하지 않은 절차에 의하여 자유나 권리가 제한됨으로써 인권이 침해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런데 상앙의 법치주의는 이보다는 관료들 및 백성들을 통제하여 왕권 강화 내지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하고자 하는 데 주요 목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가 규정한 법들은 앞의 일화에서 보듯 매우 상세하였고 그 법의 엄격한 준수를 강제하기 위한 연좌제 등 통제제도와 형벌이 강조되었다. 결과적으로 나라는 부강해지기는 하였으나 상앙은 민심을 잃었고, 그로 인하여 자신을 전격 신임하였던 왕이 죽자마자 실각하였으며 비참한 말로를 맞았다. 진나라 역시 천하를 통일하기는 하였으나 그 후 오래가지 못하였다.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공정하여야 하고, 일단 제정된 법은 엄정히 준수 내지 집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와 같이 법을 만들거나 집행함에 있어서는 과연 그 법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어떻게 집행되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자문해보아야 할 것이다.

 

 

노연주 판사 (서울북부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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