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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언

심비(心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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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몇 년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개그우먼 김미화 씨가 어느 라디오방송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신은 죽으면 비석에 딱 두 단어를 쓰고 싶다고 했다. "웃기고", "자빠졌네." 연이은 그의 해설에 잠시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한 평생 다른 사람에게 웃음을 주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왔는데, 자기는 죽어서도 성묘를 온 누군가가 자신의 묘비를 보면서 한 번 웃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노라고. 역사책에나 있을 법한 이런 사명감을 적어도 현실에서는 일찍이 보지 못한 듯하다. 

 

나는 왜 법조인이 되고자 하였을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을 때 마음 한켠에 사회정의, 약자보호, 거악척결과 같은 거창한 단어들이 없지는 않았다. 그때 이후로 어느새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지금 돌아보니 눈앞에 주어진 업무를 게을리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가지는 공공적(公共的) 함의를 매순간 짚어보았는지 돌이켜 보자면, 솔직히 자신이 없다. 재판을 통해 누군가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은 애초에 어불성설일지 모른다. 그러나 재판을 통해 잃어버린 권리를 찾아주거나, 잃어버린 정의(正義)를 회복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된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재판을 잘못하면 권리를 찾아주지 못하고 무너진 정의의 자리에 억울함을 보탤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바삐 돌아가는 법조생활 중에, 매일 주어지는 사건기록들을 언제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그저 처리해야 하는 일로만 다루어 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그 일들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인데 말이다. 사법이 일반시민들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써왔다. 제도를 바꾸고 시민들의 공감을 얻기 위한 기획들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사법신뢰 회복의 길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법조를 이루는 구성원들이 마음의 비석 위에 김미화씨와 같은 태도를 아로새기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하면 너무 이상적일까.

 

 

최종원 부장판사 (전주지방법원)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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