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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판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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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을 쓰기 시작한 지도 십여년이 지났지만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은 여전히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어렵게 느껴지는 일이다. 판결문이나 결정문을 처음 접했을 때에는 다소 어색하다고 느껴지는 문체, 통상 쓰이지 않는 단어와 문구, 각종 접속사로 계속 이어져서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은 문장 등이 참 생경하다고 느껴졌더랬다. 이제는 판결문을 작성하면서 각종 접속사를 동원하여 인용하고 문장이 길어지지 않게 끊어 맺는 것이 어렵지 않은 걸 보니 그 새 물들어 익숙해졌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여전히 비법조인의 시각에서 보면 판결문은 부자연스러운 생경한 글일 수 있겠구나 싶다. 

 

사실 판결문이 생경하게 느껴지는 것은 판결문이 단순한 논설이 아니라 기술적인 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판결문은 실질적으로는 항소심을 위한 것이라는 말도 있다.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은 해당 사안에 대한 법리적인 해석과 검토 결과를 논리적으로 정리하여 서술하는 것을 넘어서, 그와 같은 해석과 검토 결과를 일종의 정해진 용어와 형식 내지 구조에 따라 기술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판결문을 작성한다는 것의 의미는 단순히 사안에 대한 검토 내용 및 결론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사안을 법리적으로 해석하고 검토하는 방식 내지 도구가 되어 준다. 

 

실제로 사건에 대한 법리적 검토를 마치고 나름 확신에 찬 결론을 낸 후 판결문을 작성하기 시작한 경우에도 판결문을 작성하면서 결론이 바뀌는 경우는 흔치 않게 있다. 때문에 재판을 속행하면서 사건을 심리할 때에 늘 염두에 두는 것 중 하나는 그 사건에 대한 판결문이 어떠한 흐름으로 작성될 수 있을지에 관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건은 자칫 지엽적인 것에 매몰되거나 쟁점이 아닌 것에 집중되어 비효율적으로 진행되게 된다. 같은 이유로 당사자의 서면 역시 같은 흐름으로 서술된 것이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그런 면에서 예비법조인들에게 그들이 향후 어느 직역으로 가게 되든 판결문 작성에 관하여 어느 정도 숙지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필수적으로 주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노연주 판사 (서울북부지법)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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