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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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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서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일까? '요즘'이라는 시간적 요소를 대입하면 가장 힘든 일 가운데 하나는 뉴스를 보는 것이다. 텔레비전의 채널을 돌리지 않고 뉴스를 끝까지 보거나, 신문의 제목을 넘어 기사 본문의 활자들을 끝까지 읽어 가는 것은 인내를 수반하는 고통스런 작업이기도 하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고 즐겁고 평화롭게 해주며, 세상과 사람에 대한 신뢰를 주며, 열심히 노력하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을 주는 뉴스를 보았다는 기억은 사라지고, 그 반대의 짜증나며 화가 나고 불신만을 가득하게 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게 하는 뉴스를 본 기억밖에 나지 않는 것 같다. 

 

사람은 나이 들수록 넓이와 깊이와 여유가 더 해 진다는데, 오히려 편협하고 급하며 분(憤)과 노(怒)에 쉽게 이르니 나이를 거꾸로 먹고 있는 듯하다. 공자는 논어 위정(爲政)편에서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四十而不惑),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으며(五十而知天命),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다(六十而耳順)"고 회고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공자와 같은 성인의 이야기이지 나와 같은 필부(匹夫)에 해당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나이를 먹는다고 하여 저절로 불혹이 되고 지천명이 되며 이순이 되는 것이 아님을 조금이나마 깨달으니 그래도 나이먹음이 헛된 것만은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흔히 시간은 흐른다고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은 더욱 빨리 흐르고 세월의 쏜살같음을 한탄하기도 한다. 시간은 정말 흐르는 것일까? 카를로 로배리는 그의 저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The Order of Time)'에서 '언제 어디서나 동질적으로 균일하게 흘러가는 실체로서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흘러가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물리계의 사건들'이라고 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기 때문에 물리적 사건의 전개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사건의 전개가 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는 것이다. 물리계의 사건들이 없다면 우리로서는 '시간이 흐른다'라는 표현 자체를 할 수 없다. 양자물리학에 대한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인간의 삶에 투영해 보면, 우리가 불혹이니 지천명이니 이순이니 할 수 있으려면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것 때문이 아니라 불혹과 지천명, 이순에 이를 수 있는 '삶의 단면들'의 전개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삶에 있어 그와 같은 단면 내지 사건들의 전개가 없다면, 우리는 미혹될 수밖에 없고,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될 수도 없다. 이순(耳順)이 아니라 역정(逆情)의 경지에 들어서게 될 것이다. 

 

최근 뉴스보기를 힘들게 만들고 있는 일들을 보면, 상당수는 이순의 때에 접어든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이순보다는 역정의 경지에 들어선 사람들의 이야기로 보이는 것은 왜일까?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우리의 삶만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결국에는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는 솔로몬의 고백이 헛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럴 것을, 왜 우리의 삶을 흘러가게 하는 그 단면들 속에 들어와 우리의 일상을 힘들게 하는 것일까?

 

 

이상철 변호사 (법무법인 태평양)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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