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목요일언

타인의 행복

162890.jpg

영화 '나는 전설이다'의 한 장면이다. 괴이한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온 인류가 멸망한 가운데 뉴욕시에 사는 과학자 로버트 네빌(윌 스미스 분)은 날마다 생존자와 치료제를 찾으러 다닌다. 로버트는 아침마다 동네 슈퍼에 들러 슈퍼 곳곳에 세워둔 마네킹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상대는 아무런 말이 없다. 그런데도 로버트는 그들에게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한다. 잠시 스치는 장면이건만, 무거운 메시지로 읽혔다. 로버트는 뉴욕시에 속한 모든 것들을 사용하고 가질 수 있다. 어떤 면에서 로버트는 뉴욕시의 주인이 된 셈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다른 그 무엇보다 아침인사를 나눌 그 누군가가 필요했다. 

 

나만 잘 되면 된다는 생각을 노골적으로 공표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타인의 행복보다 나의 행복이 먼저라는 본능의 소리를 부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소송 사건들을 들여다보면 나의 행복이 타인의 행복과 밀접하게 얽혀 있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편모슬하에서 자란 고등학생 A군은 어느 날 집을 나와 거리를 전전하던 중 인터넷상에서 물건을 판다는 글을 게시하고 이에 속은 B를 비롯한 수십 명의 피해자들에게서 몇 십만 원씩 송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였다. 사기라는 죄의 무게가 A가 처한 무거운 환경을 이유로 가벼워질 리 없다. 그러나 A가 아버지를 여의지 않고 가출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A가 굳이 인터넷상에서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면, B를 비롯한 피해자들은 사기범죄 피해라는 불행을 비껴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곁에 있는 누군가가 기침이라도 하면 신경이 곤두서는 요즘이다. 나와 내 가족이 건강하려면 이웃한 사람들도 건강해야 한다는 진리가 전 지구적으로 증명되고 있는 셈이다. 아침인사를 나눈 이웃한 사람들 중 그 누군가는 지금도 원치 않는 사건들로 인해 시름하고 있다. 놀랍게도 법조인은 그 이웃한 사람들의 인생의 한 구간에 들어가 갑론을박하는 일을 주된 사무로 한다. 그들이 본래의 일상의 자리로 평화롭게 돌아갈 수 있을 때, 비로소 나의 행복도 지켜질 수 있지 않을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속히 진정되기를 바라면서, 그들의 행복이 소송절차를 통해 뒤늦게나마 회복되기를 소망해본다.

 

 

최종원 부장판사 (전주지방법원)

미국변호사

관련 법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