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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 증거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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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한 건의 사건에 물음표를 띄워 놓은 채 고민 중이다. 죄명은 단출하게 '폭행', 지인들끼리 사소한 다툼 끝에 쌍방 고소한 사안인데, 서로 "나는 당하기만 했다"는 주장만 높고 CCTV도 목격자도 없다.

 

사회가 급속히 변화하는 가운데 수사환경도 많은 것이 변했다. 곳곳에 CCTV와 블랙박스, 누구나 가지고 있는 휴대전화와 신용카드는 의도하거나 의도하지 않은 상태로 수많은 흔적을 남긴다. 그러한 기술의 흔적을 따라가는 일이 오늘날의 수사라고 말할 수 있겠다. 따라서 오늘날 수사의 시작은 일단 CCTV를 확보하는 일부터 시작되곤 한다.

 

그런데, 그 조밀한 흔적의 빈틈에서만 발생하는 일들이 있다. 어느 저녁, 인적이 없는 골목길에서 A가 먼저 멱살을 잡았는지, B가 그를 밀쳤는지에 대해 현대의 디지털 기술은 아무런 흔적을 남겨주지 않았다. 서로 '내 말이 진실이고 저자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말들만 남은 가운데, 그들의 진술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석연한 부분과 석연치 않은 부분을 평등하게 지니고 있어, 검사의 고민은 며칠 째 길을 찾지 못하고 아득하다. 

 

"진술증거에 의존하던 수사관행을 버리고 객관적 증거 확보에 주력하라"는 제언이 아니더라도 현대의 수사는 점점 더 객관적 증거를 어떻게 확보하고 분석하는가를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와 같은 흐름에서 진술증거를 더듬는 일은 어딘지 전근대적인 것, 진부한 것이 되어 버린 측면이 있다. 그러다 보니 나 역시 어느 순간 진술로만 구성된 사건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방법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에 이른다. 노래방 자막 없이도 노래가사를 기억하고, 네비게이션 없이도 방향을 더듬어 길을 찾아가던, 우리가 당연히 가지고 있었던 어떤 본질적인 기능 같은 것 말이다.

 

사안의 크기와 상관없이 거짓말에 의해 내가 처벌받게 되거나 나를 가해한 자가 처벌받지 않게 되는 결과에 대한 울분은 깊다. 그 울분 앞에 "객관적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는 검사의 변명에 베풀어질 관용은 없다. 조작되거나 오인되기 쉬운 말, 숨겨지거나 과장된 말, 욕망도 두려움도 품고 있는 그 말들 사이에서 그래도 기어이 진실에 가장 가까운 것을 찾아보겠다고 다시금 골무를 다잡아 낀다.

 

 

정명원 검사 (서울북부지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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