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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불법행위와 소멸시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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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행위 피해자는 가해자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이 지나면 시효로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한다(민법 제766조 1항). 그런데 이러한 소멸시효 규정을 아는 사람은 법률가를 제외하고 얼마나 될까? 법원이나 정부가 공익광고 등을 통해 피해자가 시효로 인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노력을 보지 못했다. 

 

소멸시효의 취지에 대해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고 장기간 방치할 경우 증거를 잃어버리거나 확보하지 못하여 입증이 곤란하게 될 수 있다는 점(법적 안정성),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법언 등을 들기도 한다. 

 

그러나 '3년'이란 기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흐른다. 2013년께 민법개정안 작업 과정에서 '3년'을 '5년'으로 변경하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아직 '5년'으로 개정되지는 않았다. 대여금소송처럼 차용증이나 약정서가 있는 사건과 달리,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을 하려면 '불법행위(위법성 포함)', '가해자', '인과관계', '손해배상액' 등을 각각 구체적으로 특정하고 입증하여야 한다. 그런데 법원이 만족할 만한 증거를 수집하기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가해자나 기관에 문서제출이나 기록복사 등을 요청해도 구체적 설명이나 근거 제시 없이 영업비밀, 개인정보 보호 등의 명목으로 거부당하는 일이 빈번하다. 그리고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 보면 이러한 입증준비를 하고 가해자를 찾아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판례는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이라고 함은 손해의 발생, 위법한 가해행위의 존재, 가해행위와 손해의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는 사실 등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에 대하여 '현실적·구체적으로 인식하였을 때'라고 판시함으로써 피해자를 보호하고자 하나, 입법적 해결 없이 판례만으로 피해자를 충분히 보호할 수 있는지는 매우 의문이다. 

 

애초에 '피해자가 단순히 가해자와 손해를 알았다는 사정만으로 손해배상청구권을 3년만 보장한다는 것 자체가 법치국가와 정의사회에 부합하는 것인지' 근본적인 의문도 든다. 채권은 원칙적으로 10년이 보장되는데,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권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밖에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 피해자에게는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다.

 

가해자의 '안 날로부터 3년' 소멸시효 항변은 피해자를 두 번 울리는 일이 되기도 한다. 예컨대 불법행위로 인해 사업이 망하거나 가정이 파탄 나서 하루하루 생계유지하기에도 어려웠는데, 겨우 주변 도움을 얻어 소송을 제기한 사안에서, 가해자가 아무렇지 않게 '안 날로부터 3년' 소멸시효 항변을 하는 것을 보고 그 항변의 인용 여부를 떠나 피해자가 가해자의 파렴치함에 좌절하고 분노하는 것을 보기도 하였다. 

 

법치주의 민주국가는 피해자가 불법행위 전의 상태로 원상회복을 받거나 그에 상응하는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주어야 하는데, 단기간의 소멸시효는 피해자로부터 그러한 권리를 사실상 박탈하는 것과 같다. 불법행위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것도 억울한 일인데, 피해자가 소 제기를 다소 게을리 했다고 하여 피해자로부터 손해회복의 기회를 빼앗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정의로운 입법이 답할 문제이다.

 

 

조정욱 변호사 (법무법인 강호)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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