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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의 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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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에 노수대제(瀘水大祭)라 불리는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나온다. 제갈공명이 맹획을 칠종칠금(七縱七擒)하여 남만을 평정하고 촉으로 돌아가는 길에 노수를 만났다. 노수는 치열한 전투로 많은 사람이 죽었던 곳. 제갈공명 일행은 강물 속에 가득한 원귀들이 풍랑을 일으켜 노수를 건널 수 없었다. 한 노인이 사람머리 49개를 바쳐 제사를 지내면 원귀들을 달랠 수 있다고 한다. 제갈공명은 이미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또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고 하고는, 밀가루 반죽 속에 소와 양의 고기를 채워 사람머리 모양으로 만들었다. 제갈공명은 친히 노숫가에서 자신이 만든 사람머리를 바치며 제사를 올렸다. 이에 원귀들이 사라지고 제갈공명 일행은 무사히 노수를 건넜다. 사람들은 제갈공명이 만든 것을 만두(蠻頭)라고 하였는데, 나중에 蠻頭가 饅頭로 되었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는 음식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과연 제갈공명 일행이 원귀 때문에 노수를 건널 수 없었던 것일까? 정말 원귀들이 만두를 제물로 받고 노여움을 풀었을까? 그럴 리는 없다. 그렇다면, 제갈공명은 왜 노수에서 제사를 지냈을까? 그가 노수의 거친 물살에서 전투로 죽은 많은 남만인들과 살아남은 남만인들의 고통과 원한을 읽었다면, 힘만으로는 남만을 우방으로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노수대제는 남만인들의 민심을 달래기 위한 정치적 퍼포먼스였을 것이다. 나관중이 14세기의 만두제조법을 써넣은 것일 뿐이라는 견해도 있으나, 나관중이 쓰고 싶었던 것은 올바른 '정치'인 것 같다. 이상적인 정치는 사람들을 착하게, 사람들의 관계를 평화롭게 만든다. 인간을 한 차원 높은 곳으로 이끄는 것이다. 빌리 브란트가 바르샤바에서 무릎을 꿇은 것처럼. 

 

오늘 아침 노 전 대통령이 투신했다. 우리의 정치를 생각했다. 길게 드리운 전쟁의 그늘, 분단의 현실, 이념과 지역을 내세운 맹목적 편가르기를 배경으로 제로섬의 육박전이 펼쳐진다. 방송의 폭력성과 선정성에 무감각해지듯, 정치를 보는 우리의 마음도 굳어간다. 오늘 같은 날에 한 번씩 놀랄 뿐이다. 언제쯤 우리는 갈 수 있을까? 노수의 저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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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일기에 썼던 글을 다시 읽어 본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박재완 교수 (한양대 로스쿨)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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