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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네 말도 맞고 네 말도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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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 정승의 유명한 이야기이다. 황희 정승의 집에 있던 하인들이 서로 다투었다. 하인들이 차례로 황희 정승에게 억울함을 호소하자 황희 정승은 "네 말도 맞고, 네 말도 맞다"고 하였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부인이 "결국 누가 맞다는 것입니까. 당신의 판단이 명확치 못합니다"라고 말하자, "부인 말도 맞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서로 대립적인 이해관계에 있는 당사자들 사이에서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재판부의 업무를 처리하여 오면서는 이 일화를 떠올릴 기회가 별로 없었다. 양 당사자의 입장이 모두 일리가 있다고 판단되더라도 황희 정승과 같이 "네 말도 맞고 네 말도 맞다"고 답할 수는 없다. 어찌되었든 간에 어느 당사자가 그로 인한 법적 책임을 부담할 것인지 여부를 결론지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재판을 진행하면서 황희 정승 일화가 종종 생각나곤 한다. 특히 양 당사자와의 사이에 증거 채택 여부나 절차 진행 등에 관하여 의견이 대립했던 때에 더욱 그렇다. 재판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를 결정함에 있어 그 판단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법률적으로는 몇몇 구체적인 사유가 특정되어 있는 이외에는 대체적으로 '필요한 경우', '상당한 방법으로', '적정한 경우'라는 모호한 기준만이 주어지고, 당사자가 증명할 사실을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아니한 채 증거조사를 통해 새로운 주장 사항을 만들어내려는 모색적인 증거신청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원칙 정도이다. 결국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사건의 최종적인 결론이 어떠한 형태로든 고려될 수 없다. 그러나 재판은 그 진행 경과에 따라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 같은 것이어서 최종적인 모습이 절대적으로 장담될 수 없고, 소송절차는 신속하며 경제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민사소송의 원칙과 더불어 사실심 충실화와 당사자의 소송적 만족감도 강조된다. 황희 정승의 일화도 결국은 재판을 포함한 인간사의 그러한 면을 일깨워주는 것일 테다.

 

결국 개개의 재판에서 그 때 그 때의 상황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만, 재판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서 매너리즘에 빠져 형식적으로만 사건을 처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레 선입견을 갖고 사건을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곱씹어 보게 된다.

 

 

노연주 판사 (서울북부지법)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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