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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심판이 선수로 뛴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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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시장이라는 경기장에서 수많은 선수가 뛴다. 선수는 참가비를 내고 출전한다. 소비자는 경기를 즐기고 승자는 상금을 얻는다. 승패는 나날이 바뀌고 돈이 도는 한 새로운 선수가 계속 등장한다. 완전경쟁시장에서 선수는 최종적으로 정상이윤을 얻고 소비자와 함께 최대의 효용을 나눠 가지는 평형상태에 이른다. 

 

경기장이 언제나 이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선수끼리 짜고 승패를 조작하거나 반칙을 저지르기도 한다. 이때는 심판이 색출하여 처벌하면 된다. 그러나 기존 선수의 기량이 압도적이어서 신규 선수가 진입하기 어려울 때는 일이 복잡해진다. 기존 선수에게 핸디캡을 부과하거나 신규 선수를 지원할 수도 있고, 기존 선수를 반으로 쪼갠 후 각각 배양하여 두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지만, 어느 방법도 저마다의 시빗거리가 있다. 골치가 아파진 심판은 몸소 선수로 뛰어들어 판을 바로잡아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경기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심판이 전업 선수보다 실력이 나을 수는 없다. 그래도 이왕 출전한 이상 이겨야 하므로, 심판 겸 선수는 경기의 규칙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바꾸고 편파판정을 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경기는 재미없어지고 관객은 떠난다. 심판이 공정을 맹세해도 그가 선수를 겸하는 이상 판정의 공정성을 믿을 사람은 없다. 현명한 선수라면 심판이 선수 노릇까지 하는 경기에는 아예 출전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심판이 세금의 지원을 받아 참가비를 낸다면 더 큰 문제다. 전업 선수라면 참가비와 상금을 저울질하고 승률을 예측해 보며 출전 여부부터 고민하겠지만, 심판은 자기 돈으로 참가비를 내는 게 아닌 만큼 이기든 지든 돈 걱정 없이 계속 출전할 것이다. 이제 경기장은 더 이상 합리적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이런 농담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민간서비스의 수수료가 높다거나 소상공인이 힘들다는 말이 들리면 지방자치단체가 수수료를 받지 않는 공공앱이나 공공페이를 개발한다. 혹은 민간이 참신한 서비스를 개발하여 유료로 제공하는 것을 공공기관이 모방하여 무료로 풀기도 한다. 이렇게 급조된 공공서비스는 시장에서 경쟁으로 단련된 민간서비스의 수준을 따라잡기 어려우므로 소비자에게 외면당하기 일쑤다. 이때쯤 정부가 나서서 어떻게든 이용률을 높이려고 세금을 들여 추가혜택을 제공한다. 덕분에 반짝 이용률이 높아지면 그 공공서비스는 성공사례로 둔갑한다. 다른 지자체가 부랴부랴 따라하고 악순환이 반복된다. 경제논리로 돌아가지 않는 경쟁자를 상대하여 민간업체가 합리적 예측과 대응을 할 수는 없다. 공공앱이나 공공페이가 실패하면 세금의 낭비요, 성공하면 시장질서의 교란이다. 

 

심판이 선수로 뛰는 순간 그는 심판도 아니고 선수도 아니다. 공공의 역할은 심판으로서 시장의 질서를 바로잡고 민간의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지, 선수로서 경쟁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다. 제발 좀 참자. 민간의 영역은 민간에게 맡겨두고, 세금은 시장 아닌 다른 곳에 쓰라.

 

 

한애라 교수 (성균관대 로스쿨)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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