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목요일언

로마의 추억

161951.jpg

20여년 전 어느 밤에, 나는 생애 최초의 해외여행 중에 로마에서 팍스로마나 시절의 고대유적지 앞에 혼자 앉아 있었다. 유적은 조명을 받아 화려하게 빛을 냈지만, 그걸 지켜보는 기분은 왠지 우울했다. 역사에 쌓아 올린 인류의 탐욕을 목격하고 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이마에서 턱까지 길게 칼자욱이 새겨진 험상궂은 남자에게 쫓기기까지 했기에 더욱 어두운 기억으로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다행히 별다른 일은 없었지만 그때의 이미지가 강렬했던지, 이후로는 사람들의 욕망을 마주할 때마다 조명 위로 번들거리던 고대유적지가 문득문득 떠오르곤 한다. 

 

몇 년 전 일이다. 어느 아저씨의 휴대폰에 "밤이 외로운 싸모님들에게 서비스 제공 알바, 1회 80만원+α 보장" 운운하는 문자가 도착했다. 응당 "스팸 꺼져!"라며 단호하게 문자삭제와 수신거부 콤보를 날려주어야 마땅하겠지만, 이 아저씨는 순진하게도 '외로운 싸모님'들과 재미도 보고 돈도 벌겠다 싶었는지, "그 꿀알바, 내가 하겠소!"하며 덤볐다가 '싸모님들의 안전을 위한 보증금' 운운하는 사기꾼에게 속아 꽤 큰돈을 날리고 말았다. 

 

50대 후반의 평범 그 자체였던 아저씨는 세상 불쌍한 표정으로 "가계에 한푼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했는데 사기를 당했다"고 하소연을 했지만, 듣고 있던 나는 기분이 묘했다. 진정 아저씨는 자신의 하룻밤 봉사(?)가 80만원어치 값어치가 된다고 생각했을까? 아저씨는 하루에 8만원어치라도 자신의 가족에게 충실하고 있을까? 그리고 자신을 속인 것이 수화기 너머 얼굴 없는 사기꾼이 아니라 스스로의 욕망이었다는 것을 조금은 깨달았을까? 비슷한 피해사례는 그 후로도 속출했다. 창피해서 신고를 못한 사람도 많았을 것을 감안하면, 수화기 너머 그 사기꾼은 꽤나 쏠쏠하게 한 몫 챙겼으리라.

 

돈을 노린 사기꾼의 욕망, 돈과 색을 함께 탐하다 결국 먹잇감이 되고 만 피해자의 욕망. '100만원을 넣으면 넉 달 동안 매주 10만원씩 줄께', '천만원을 투자하면 1년 뒤에 두 배로 불려 줄게', 돈 놓고 돈 먹기 놀이를 하다가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된 사람들. 이런 저런 욕망의 노예가 된 사람들의 아우성을 듣고 있노라면, 문득 20년 전 어두운 밤하늘에 노란 조명빛을 발하며 우뚝 솟아 있던 로마의 유적이 떠오르며, 점점 더 높이 솟구쳐 오르는 것이다.

 

 

정유미 부장검사 (대전지검)

리걸에듀

관련 법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