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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말

[나의 주말] '종로에서 산딸기 따먹기' 양중진 부부장검사

북악산 성관길 18km… 길섶 곳곳에 빨간 산딸기가 숨바꼭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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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선의 미학이 돋보이는 한양도성 성곽길

 

어느 주말 서울 한복판 종로구에서 산딸기를 발견했다. 그곳에 가면 산딸기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믿을 수 없다면 이번 주말 당장 그곳에 한번 가보시길. 물론 먼저 간 사람들이 다 따먹었을 수도 있어 산딸기가 남아 있다고 보장하긴 어렵다.


창의문에서 정상 올라 

숙정문·말바위·혜화문으로


산딸기 옆에는 커다란 문이 하나 있다. 한양도성 북대문이다. 동대문, 서대문, 남대문은 들어봤지만 북대문을 들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다. 북대문은 사실 대문으로서의 기능을 잘 하지 못했다.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 정상에서 혜화문으로 내려오는 중간 산악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서울의 대문 중 유일하게 단청이 없다. 현판에는 숙정문이라고 쓰여 있다.


능선 따라 걸으면 

한양도성의 아름다움이 한 눈에


산딸기를 따먹으러 일부러 북대문에 오를 일은 아니다. 성곽길 18.627km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한양도성은 백악(북악산), 낙타(낙산), 목멱(남산), 인왕산의 등성이를 따라 이어진다. 청와대의 뒷산인 북악산이 주산인 북현무에 해당하고, 목멱산이 남주작이다. 자연스럽게 좌청룡은 낙타산, 우백호는 인왕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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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의 시 한줄만도 못한 천억 상당의 길상사

 

한양도성에는 조선의 지배이념인 유교에 따라 4개의 대문을 두었다. 바로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을 넣어 그 이름을 지은 것이다. 동쪽의 흥인지문(興仁之門), 서쪽의 돈의문(敦義門), 남쪽의 숭례문(崇禮門)이 그것이다. 북쪽의 숙정문은 본래 지혜로울 지(智)자를 넣어 이름을 지어야 했다. 하지만 백성들이 지나치게 지혜로우면 지배층에 해가 될 것을 염려해 엄숙하고 편안하라는 의미로 숙정문(肅靖門)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숙정문은 엄숙하다 못해 고즈넉하기까지 하다. 4대문 중 사람의 발길이 가장 적은 탓이다.

 

시대와 역사에 기대어  

살다간 사람들의 이야기도


창의문에서 북악산 정상에 올라 숙정문, 말바위 고개를 거쳐 혜화문에 이르는 성곽길 주변에는 사연이 많다. 1·21 사태 당시 총알에 맞은 자국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소나무가 있는가 하면, 자연적인 능선을 따라 휘어진 한양도성의 아름다움도 있다. 운이 좋으면 북악산에 사는 사슴도 만날 수 있고, 김광섭 시인이 노래한 성북동 비둘기도 만날 수 있다. 대표적인 부자 마을인 성북동 빌라촌과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북정마을이 마주보고 있는 아이러니한 풍경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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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에서 산딸기를 따먹을 수 있는 숙정문

한용운 선생은 출소 후 총독부를 쳐다보지도 않겠다며 정북향으로 심우장을 짓고 남은 생을 마쳤다. 북에 두고 온 연인 백석을 잊지 못했던 김영한은 평생 모은 천억원의 재산을 백석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며 법정 스님께 시주했다. 누군가에겐 천원의 가치도 없는 시 한 줄이 누군가에겐 천억보다 더 큰 가치가 있나 보다. 그게 인생일까. 그렇게 시대를 풍미한 요정 대원각은 극락정토를 꿈꾸는 길상사가 되었다. 흰눈이 펑펑 내리는 날 길상사에 가면 나타샤를 잊지 못하는 흰 당나귀가 어디선가 응앙거리고 있을 것만 같다.


성곽길은 갈 곳 없는 주말이면 나에게 시대와 역사와 거기에 기대어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벌써 5년이나 되었다. 갈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들이 나를 기다리다 깨어나 속삭이곤 한다.

그나저나 마지막 다섯 번째 신(信)은 어디에 있을까. 조금만 눈을 크게 떠보면 한양도성 한복판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양중진 부부장검사 (수원지검)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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