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법조프리즘

재판과 '갑인지 감수성'

161882.jpg

법원이 지난 해 정치권의 유력인사가 연루된 성범죄 사건에서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개념을 설시하면서, 이 개념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대법원은 일찍이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7두74702 판결 참조)"라고 판시하였는데, '성인지 감수성'은 논자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정의하지만 대체로 '성별 간의 불균형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갖춰 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해 내는 민감성'으로 정의된다.

 

필자의 경험이 아직 부족해서인지, 필자는 재판에서 가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을 관계'의 불균형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갖추고 갑과 을의 차별적 요소를 감지해내는 민감성"인 소위 '갑(甲)인지 감수성'을 의식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이는 '성인지 감수성'의 정의에 빗대어 필자가 만들어낸 개념이니 참고하기 바란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만한 프랜차이즈 회사의 법률고문을 수년간 하고 있다. 이 회사를 대리하여 가맹사업법 및 가맹계약을 준수하지 않은 가맹사업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하고 있고, 각 재판에 참석할 때마다 의뢰인이 세간에 인식되는 것과 같이 소위 '갑질'을 하는 자로 재판부에 비춰질까 경계하는 모습 등이다.

 

그러나 세간에 '을'로 인식되는 가맹사업자가 자유로운 의사로 가맹사업법에 따라 계약을 체결했다가도, 자신이 약자이거나 경제적으로 부족하다는 이유를 기초로 계약서에서 정하지도 않은 물품을 소비자에게 팔아도 된다거나, 계약으로 이미 정해져 있는 '로열티' 등 각종 대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면 처음에 가졌던 생각이 바뀌곤 한다. 그 때부터 세간에서 인식하는 '갑을 관계'가 순식간에 뒤바뀌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갑을 관계'는 상대적이며, 자유로운 의사를 기초로 체결된 계약의 본질에 비추어보면 사실상 허구에 가깝다. '갑을 관계'를 잣대로 사안을 판단하기 시작하면 사실상 또 다른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법의 영역에서 감수성은 '성인지 감수성' 정도로 족하고, 오늘도 '갑인지 감수성'에 대한 판단은 다시 한 번 경계한다.

 

 

성우린 변호사 (법무법인 대륙아주)

미국변호사

관련 법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