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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명숙 전 총리 재조사 요구는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정치자금 수수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촉구하는 등 여권을 중심으로 재조사 요구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전 총리는 2015년 8월 정치자금법 위반죄로 실형 2년과 추징금 8억 3000만원을 선고받고 형을 복역한 뒤 2017년 만기출소했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여권의 재조사 요구에 대해 "사망한 증인이 남긴 방대한 비망록을 보면 수사기관이 고도로 기획해 수십차례 수감 중인 증인을 불러 협박, 회유한 내용을 채워진 것으로 안다"면서 지지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주장의 계기가 된 것은 사건의 핵심 인물인 고 한만호 씨의 비망록이다. 이 비망록에는 추가 기소에 대한 두려움과 사업 재기를 도와주겠다는 검찰의 약속 때문에 허위 진술을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한다. 

 

한 전 총리 사건은 이미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있었고 형의 집행도 끝났다. 더구나 대법원은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깊이 있게 심리를 하고 유죄를 확정했다. 9억원 가운데 6억원에 대해서는 대법관 5명이 무죄 의견을 내기도 했으나, 수표를 포함한 3억원에 대해서는 대법관 전원이 유죄로 인정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국회 인사청문 과정에서 한 전 총리가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는 여권의 주장에 대해 "사법부의 최종적인 판단은 존중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제된 비망록은 갑자기 나타난 새로운 증거가 아니라 당시 1~3심 재판에서 정식 증거로 채택되었다. 대법원은 이 비망록과 다른 증거를 종합해서 유죄를 확정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 과거사위원회에서조차 이 사건은 거론되지 않았다. 사건의 진실은 당사자를 제외하고는 알기 어렵다. 정치인이나 법무부장관이라고 해서 경험하지 않은 개별 사건의 진실을 알 수는 없다. 그런데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모든 정황이 한 전 총리가 사법농단의 피해자임을 가리킨다", "검찰은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없는 뇌물 혐의를 씌워 한 사람의 인생을 무참히 짓밟았다"라고 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무모함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지 의아하고 걱정스럽다. 믿고 싶지 않은 재판결과이니 조작이라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 편이니까 무조건 믿으라는 것인가? 

 

세상에는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고 실제로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다. 수사나 재판도 오류 가능성이 늘 있기 때문에 법에서 재심 등 불복 절차를 두고 있다.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이지만 사법절차에 따르는 것이 국민의 의무이다. 더구나 당사자는 국무총리까지 지낸 인사로서 사회적 지위, 정치적 역량, 경제력, 인맥 등 충분한 역량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런 당사자가 증거를 갖춰 사법절차에 따라 재심을 신청하면 된다. 그렇게 하지 않고 정치권이 나서서 검찰과 법원을 압박하는 것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다. 법치주의를 훼손하면 그 폐해는 길고도 크며 그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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