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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과 후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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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임 판사 시절인 1992년께 일이다. 아마도 주식일임매매 관련 손해배상사건 같은데, 다른 재판부에 알아보았더니, 한 선배 판사님이 자신이 쓴 판결문을 보여주시면서, 자신이 20~30년 전의 일본 판례들을 참조하셨는데, 일본 판례들은 그보다 몇십년 전의 독일 판례를 참조하였다고 귀띔해 주셨다. 

 

사회가 발전해 나가면서 문제들이 발생하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법이 만들어지는데 후진국이 선진국을 따라가면서 같은 문제를 겪고 법도 베끼게 되는 것 같다. 후진국에서는 법은 있는데 문제는 없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 개인파산절차에서 면책이 최초로 허가된 것은 1997년의 일인데, 관련 법 규정은 1962년에 제정된 파산법에도 있었다. 

 

최선진국에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다른 나라에는 법이 없고, 따라서 최선진국은 법을 창조하여야 하는 국가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최선진국은 역시 미국인지, 독일 교수들도 자기 연구실에서 미국 책을 공부하고 있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법을 베끼는 것 즉, 법의 계수는 쉽지 않다. 개화기에 서양을 공부하던 이들은 'right'가 국민들이 왕(국가)에게도 무엇인가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라는 데에 큰 충격을 받았었다. 베낄 법이 여러 개면 취사선택이나 절충도 어렵다. 독자적인 걸 만들다 탈이 나기도 한다. 필자가 연구하는 민사소송법의 경우 일본이 모법인 독일법과 달리 독자적으로 만든 조항들 중의 일부가 난제발생의 원인이 되어 지금의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법이 너무 쉽게, 너무 많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우리나라도 발전하였기 때문에 필요한 입법례도 복잡한 미묘한 것이 많아 법전이나 교과서 정도로는 알기 힘들어졌다. 사회 내의 연관성과 의존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일단 오류가 발생하면 영향력도 크고 고치기도 어렵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실적주의와 외형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무슨 일에든 꼭 법까지 건드리고 싶어 하고, 개정조문의 수, 용역보고서의 양을 중시하는 경향은 선진국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호흡도 좀 길었으면 좋겠다. 선진국에서는 다리를 너무 빨리 만들면 데모가 일어나기도 한다. 법 조항 하나는 웬만한 다리 하나보다 클 것이다.

 

 

박재완 교수 (한양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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