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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 있는 것들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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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연수원 때의 일이다.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봉사시간 같은 것을 채우기 위해 파주에 있는 요양원에 연수생들이 단체로 몰려간 적이 있었다.

“자, 여기 정원에 잔디의 생장을 방해하는 이런 풀이 있어요 이 풀을 뽑아 주세요, 그런데. 이 풀이랑 비슷한 요 풀은 나물로 키우는 거니까 뽑지 마세요”

과제는 명확했다.

‘나물로 쓰이는 요 풀을 남기고, 잔디의 생장을 방해하는 이 풀을 뽑을 것’

그런데 문제는, ‘이 풀’과 ‘요 풀’이 매우 유사하게 생겼다는 것이다.

뜨거워지는 초여름 햇살아래 연수생들은 혼란에 빠졌다.

‘도대체, 이 풀과 요 풀은 어떻게 다른가..’

신중함을 기본 소양으로 품고있는 예비법조인들은, ‘열 포기의 잡풀을 남기더라도 한 포기의 무고한 나물을 제거할 수 없다’는 구호를 외치며 그늘에 모여 웅성거리고만 있었다.

그때 시골출신의 남다른 감각으로 이 풀과 요 풀을 구분하여 작업에 열중하고 있던 나에게 한 연수생이 다가와 물었다.

‘기준이 뭐냐’

그때까지 어떤 본능적인 감각에 따라 풀을 구분하고 있었을 뿐이지만, 그렇게 물으니 뭔가 ‘구체적인 기준’ 같은 것을 말해 주기는 해야 할 것 같아서 더듬거리며 말했다.

‘자세히 보면... 요 풀은 표면이 매끈하고, 이 풀은 잎 표면에 잔털 같은 것이 있는데...’ ‘아하~’ 경쾌한 추임새를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연수생은 말릴 겨를도 없이 손나팔을 하고 그늘에 모여있던 혼란의 연수생들에게 소리쳤다.

‘기준은 털의 유무! 털이 있는 것들을 뽑아’

‘아, 털의 유무!!!’ 마침내 기준을 습득한 그들은 단호하게 작업에 돌입했다. 명확한 기준을 인식한 예비법조인들의 성실함으로 그날 그 정원에서 ‘털있는 것으로 판단 받은 자들’은 모두 제거되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풀들이 제거되었는지, 이 풀과, 요 풀은 정확히 구분이 되었는지, 털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달고 있다가 함께 제거되어 버린 이 풀은 없는지, 혹은 털을 가지고 있으나, 애초에 이 풀도, 요 풀도 아니었던 제3의 풀, 그 무고한 희생은 얼마도 되는지 확인해 보지 못했다.

다만, 오류와 무고를 가늠할 길 없이 말끔히 정리된 잔디밭을 바라보며, 나는 어쩐지 조금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설프게 기준 같은 것을 발설해 버린 것이 그 모든 책임의 시작인 것 같아 와락 불안감이 밀려왔다.

10여년이 더 지난 어느 법정 같은 곳에서, 그날의 정원을 떠올리는 날들이 있다. 기준이란 걸 무기로 가진 법조인들의 단호한 얼굴과 말끔히 정리된 듯 보이던 잔디밭, 혹여, 그날의 그 정원에서 ‘털 있는 자’로 몰려 무고하게 뽑혀나간 어떤 풀들이 있다면, 그래도 풀들, 그들의 단단한 생명력으로 다시 뿌리 내릴 수 있었기를, 염치없이 바라 보는 것이다.


정명원 검사 (서울북부지검)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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