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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Home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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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인 코로나 사태로 인해 유엔 본부로부터 한국에서의 임시 재택근무 허가를 받아 4월 중순 일시 귀국하게 되었다. 유럽 출신 일부 동료들은 코로나 사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상시 마스크 착용이나 전면 재택근무 체제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낸 반면, 다른 동료들은 현지의 열악한 의료환경 등을 고려하여 귀국을 원했지만 본국의 상황이 악화되면서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 현지에 계속 머무를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있었다. 

 

귀국길에 올라 대부분의 조명과 에어컨이 꺼진 을씨년스러운 프놈펜 공항에 오로지 한국 국적의 비행편들만 운행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 우리나라가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상황에 선도적으로 대처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귀국 직후 가족들을 모두 외부 숙박시설로 내보낸 후 이루어진 2주간의 자가격리 또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먼저, 담당 공무원들의 세심한 배려에 고마움을 느꼈다. 휴대전화로 위치를 추적하고 불시에 전화하거나 방문하는 등 프라이버시에 대한 중대한 침해로 볼 수 있는 일들을 겪었으나, 모든 공무원들은 정중하고 공감하는 태도로 업무를 수행하였다. 생활물품의 지원 못지 않게 정신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도움을 주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수입의 3분의 1을 세금으로 내는 국민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국가기관(2012년 설문조사 결과 신뢰도 83%)으로 거듭난 스웨덴 국세청의 비결은, 세무조사 과정에서 납세자들을 공정하게 대우하고 존중받았다고 느끼게 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권력기관이 신뢰를 얻는 방법은 그들을 인간답게 제대로 대우하는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다음으로, 감염병 유행 중에도 변함 없이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생필품이 몇 시간 만에 또는 다음 날 새벽에 문 앞까지 배송되는 현실에서 자가격리로 인한 생활의 물리적 불편은 거의 없었다. 미국의 전 노동부 장관 로버트 라이히(Robert Reich)는 가디언 지에 기고한 글에서, 코로나 사태로 4개의 계급이 분화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새로운 환경에서 근무하는 원격 노동자들(The Remotes), 위험을 무릅쓰고 계속 근무하여야만 하는 필수 노동자들(The Essentials), 수입원을 잃게 된 노동자들(The Unpaid), 그리고 잊혀진 사람들(The Forgotten)이 그것이다.

 

문헌학자 김시덕은 도시 재개발로 변두리로 밀려난 사람들의 존재를(갈등 도시), 이혜미 기자는 '지옥고(지하, 옥탑, 고시원)'와 그보다도 못한 쪽방에 살고 있는 청년층 등 수십만 명의 존재를(착취도시, 서울) 우리에게 일깨운다. 생계 수단이 없는 정년퇴직한 노년층 역시 '임계장(임시 계약직 노인장)'으로 불리면서 극히 열악한 환경 아래 비정규직의 시급 노동에 내몰리고(조정진, 임계장 이야기), 최근 이천 물류창고 화재에서 보듯이 무수히 반복되는 산업안전사고에도 많은 노동자들은 여전히 목숨을 걸고 일하고 있는 것이 2020년 한국의 현실이다. 

 

법의 존재 목적 중 하나는, 요즘과 같이 미래의 새로운 질서를 논하면서 각자도생을 추구하는 시기일수록 더욱 잊혀지기 쉬운 사람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이 시대의 진정한 '필수 노동자'로 거듭나기 위한 법률가들의 분발이 필요하다.

 

 

백강진 재판관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EC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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