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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언

말(言)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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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학생이 어디선가 동물학대 영상을 가져와 인터넷에 올렸다가 동물보호법으로 입건되었다. 영상 속 학대행위가 얼마나 비참하고 잔인했던지(유쾌하지 않으므로 설명은 생략한다), 캡처한 사진 몇 장을 보았을 뿐인데도 나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학생은 영상을 퍼나른 이유에 대해 "신기해서요"라고 답했다. 신기하다니. 참으로 때려주고 싶게 천진난만한 대답이 아닌가. 사실 신기해서라기보다는 충격적인 영상에 쏠리는 사람들의 관심을 즐긴 것이라고 짐작되지만. 

 

'분노해야 마땅해 보이는데, 왜 이 아이는 다른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 생각하던 중 난데없이 중용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희노애락지미발, 위지중; 발이개중절, 위지화).

 

감정이 상황에 들어맞으면 별 탈이 없다. 즐겁고 행복한 상황이면 웃고, 슬픈 상황이면 울고, 억울하고 부당한 상황이면 화를 내야 한다. 

 

이유 없이 약한 존재를 괴롭히는 장면을 보면, 신기함이 아닌 분노를 느끼는게 맞다. 반면 별로 화낼 일도 아닌데 허구헌날 화를 내고 있다면 분노조절장애일 수 있으니 병원행을 권한다. 꽃같은 아이들이 속수무책 배와 함께 수장되는 것을 보면서 슬픔과 안타까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정상이 아니다.

 

감정은 그저 본능적으로 드러나는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경험이 쌓일수록 감정의 자리를 제대로 잡는 것이야말로 도를 닦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감정뿐만 아니라 말(言)도 자리를 잘 찾아야 한다. 같은 말도 출처와 방향이 어긋나면 사달이 난다. 예컨대 이런 거다. 친구한테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해 곤란을 겪는 사람이 "그거 몇 푼 된다고. 되는 대로 갚으면 되지"라고 말해주면 훈훈하고 통 큰 우정이 된다. 허나, 똑같은 말이 돈을 빌려간 친구의 입에서 나오면, 우정 따윈 개나 줘버리고 고소·고발전으로 번지기 십상이다. 아이가 마구 뛰어다니다 모르는 사람과 부딪쳤는데, 상대방이 "아직 어린 애라 뭘 몰라서 그런건데요"라고 대응하면 상황이 무난하게 종료되겠지만, 같은 말이 애 엄마 입에서 나오면 어른 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 

 

말과 감정의 제자리 잡기. 인간이라면 자연스럽게 갖추게 될 기본인 것 같지만, 늘 그렇듯 기본이 가장 어렵다.

 

 

정유미 부장검사 (대전지검)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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