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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무역기구(WTO)의 정상화를 위하여

- 분쟁해결절차 개정논의 소고(小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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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序)

고전파 경제학자 리카도(David Ricardo)는 200년 전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On the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라는 저서를 통하여 비교우위(Comparative Advantage) 이론을 제시하며 국가에 의하여 통제된 무역으로는 최적화될 수 있는 자원의 배분이 왜곡될 수 있고 따라서 자유경쟁에 따른 무역으로 모든 국가가 상호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주장을 전개함으로써 자유무역주의의 사상적 기초를 놓은 바 있다.


오늘날 그 자유무역주의에 입각해 다자무역체제의 수호자 역할을 수행하는 세계무역기구(WTO, World Trade Organization)는 1947년 체결된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General Agreement on Tariff and Trade)'을 계승, 발전시켜 1994년 마라케쉬 의정서(Marrakesh Agreement Establishing the World Trade Organization) 채택 결과로서 출범한 대표적인 국제기구이다.


WTO 협정 중 부속서 II '분쟁해결양해각서(Understanding of Rules and Procedures Governing the Settlement of Disputes)'는 WTO 출범의 가장 큰 성과물인 무역통상분쟁에 관한 사법절차를 규정하는 모법(母法)에 해당한다. 분쟁해결양해각서에 의한 절차는 GATT 체제에서 운영되던 분쟁해결에 관한 절차적 운영과 결정 선례 등을 계승하되, 독자적인 분쟁해결기구(Dispute Settlement Body)를 설치하고, 판정결과에 구속력이 없었던 내재적 한계를 극복하여 최종 채택된 패널 및 상소기구 결정이 모든 회원국들을 기속하며, 심급제에 의한 사법심사를 가능하게 하였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발전을 이루었다. 국제조약이 실효성 있는 규범이 되기 위하여는 그 집행과 분쟁해결을 위한 체제가 제대로 작동해야만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사법작용으로서 분쟁해결절차의 역량을 강화한 것은 WTO 체제의 큰 성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분쟁해결양해각서는 WTO 출범 당시 향후 회원국들 상호간에 GATT 체제하의 분쟁해결절차 전반에 관한 사항을 재검토하여 그 유지·수정 또는 폐지 여부를 협의할 것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애초 그 기한은 4년으로 예정되었으나 협의 시점이 지나도록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후 2001년 도하각료회의선언(Doha Development Agenda)에서 분쟁해결양해각서의 개정을 위한 협상을 지속하기로 합의하여 다른 안건과의 연계 없이 2003년까지 독자적인 협의절차를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WTO 일반이사회(General Council)에서의 기한 연장이 거듭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5년이 지난 현재까지 가시적인 성과 없이 교착상태에 머물러 있다.


2. 분쟁해결절차 개정논의 진행 경과

분쟁해결양해각서 및 각 분쟁별 세부 작업절차(Working Procedures) 등 근거규정에 의하면 분쟁해결절차는 크게 선행절차인 양자협의(Consultation), 본 절차인 패널 심리(Panel Review) 및 상소기구 심리(Appellate Body Review), 후속절차인 판정 결과의 이행(Implementation) 및 불이행시의 보복절차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분쟁해결양해각서 각 절차별로 현재까지 진행 중인 개정 안건은 (1) 3자 참여국의 권리(third party rights) (2) 패널 구성방식(panel composition) (3) 파기환송제도(remand) (4) 합의해결(mutually agreed solutions) (5) 비밀정보보호(strictly confidential information) (6) 이행·보복절차 간 순서정립(sequencing) (7) 보복 이후 절차(post-retaliation) (8) 투명성 제고 및 법정조언서 도입(transparency and amicus curiae briefs) (9) 기한 설정(time frames) (10) 개도국 특례(developing country interests) (11) 유연성 및 회원국 통제(flexibility and member control) (12) 효과적 이행확보(effective compliance) 등 총 12개 의제로 요약된다.


각 안건은 다양한 회원국들이 나름의 제안 이유를 갖고 상정한 의제들로 현행 분쟁해결절차가 직면한 문제점들을 골고루 반영하고 있다. 전체 회원국들이 각 의제별로 개정의 필요성과 세부 내용에 관한 논의를 진행하고는 있으나 제안 의도 자체에 대하여 이의가 제기되거나 구현을 위한 기술적 난점 및 실현가능성에 대한 회의론 등 이견이 다양하여 합의도출은 매우 어려운 상태이다. 특히 갈수록 분쟁해결절차에 회부되는 사건의 종국처리기간이 늘어나는 고질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신속한 분쟁해결 도모 등 제도의 효율성 제고와 구조적 문제 해결에 중점을 두는 것이 주요 선진국의 입장이라면 분쟁해결절차에 대한 접근성을 강화하고 WTO 협정상의 권리 향상을 보다 용이하게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개발도상국 측 주된 논지인데 세부 안건마다 양측의 입장 차이가 뚜렷하게 대립하고 있고 각 회원국별로도 서로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다르며 달리 절충의 여지가 있는 대안도 제시되지 못하고 있어 어느 안건도 확실한 논의의 진전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으로는 지난 25년간 WTO 분쟁해결절차가 운영되어 오면서 분쟁해결양해각서의 규정상 미비점이나 공백을 실무례와 관행의 축적에 따라 해결해왔으므로 그러한 관행에서 벗어나는 내용의 개정 방향에 대하여 협의 필요성 자체에 대한 회의적 입장 내지 신중론이 우세하고 개정의 당위성에 대한 절실한 공감대 형성이 어려운 이유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안건별 제안 이유나 논의 과정을 살펴보면 현재 WTO 분쟁해결절차가 당면한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하여 중요한 의의를 갖는 것이 많다. 특히 △분쟁 당사국이 아닌 제3자로서 해당 분쟁에 실질적 이해관계(substantial interest)를 갖고 절차에 참여하는 3자 참여국의 권한을 보다 확대·향상시키자는 논의, △비상설기구로서 분쟁마다 설치·구성되는 현재의 패널 구성 방식에 관한 세부 절차를 보다 효율적으로 규정하자는 논의, △분쟁심리 과정에서 제출되는 각국의 서면 공개 여부와 그 시점 내지 범위, 비밀정보보호를 위한 세부 조치, 패널 및 상소기구 구술심리의 외부 중계 등 공개 허용 여부, 당사국이나 3자 참여국 지위에 있지 않은 단체나 전문가의 법정조언서 등 외부 의견 제출의 허용 여부 등 분쟁해결절차의 투명성을 제고시키자는 논의, △현재 분쟁해결양해각서 규정상 가장 큰 미비점 중 하나인 이행단계에서의 분쟁절차 진행과 보복절차 진행 상호간의 선후 관계를 명문의 규정으로 분명하게 해야 한다는 순서합의(Sequencing Agreement) 논의, △개발도상국에 대한 절차적 우대 등을 통해 회원국 상호간에 분쟁해결절차 이용에 관한 형평성과 접근성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논의, △현행 상소기구가 패널 판정 결과에 대한 협정 해석·적용의 문제만을 심리 대상으로 하는 법률심으로 기능하면서 추가 사실인정이 필요할 경우 최종 판단에 공백이 발생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파기환송 제도를 도입하여야 한다는 논의 등은 보다 양질의 분쟁해결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면밀하고 신중하게 검토를 계속할 필요가 있는 사항들이다. 


출범 직후부터 시작된 분쟁해결양해각서에 관한 개정 협상이 25년간 별다른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동안 협상을 주관하는 의장단이나 각국 담당관들은 계속 교체되어 논의의 연속성이 떨어지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비효율적인 의사결정방식이나 당장의 시급한 현안이 우선하는 등 정치·경제적 내외부 요인으로 인해 단호한 추진 동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내재적 한계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지난 수년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의 급속한 확장 기조와 지역별 경제협정 확대 등 국제통상환경의 빠른 변화에 발맞춰 WTO 체제 또한 조속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인데 현재 임기 만료로 공석이 된 상소기구 위원의 후임 인선이 중단됨으로써 사실상 기능이 정지되어 있는 상소기구 정상화 논의와 WTO 체제 전반에 관한 개혁 논의 진행이 계속되고 있으므로, 분쟁해결양해각서 개정 협의 또한 이와 연계하여 신속한 성과물을 도출할 필요가 크다.


3. 결어(結語)

그토록 작은 코로나가 휩쓸고 간 세상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우리가 알던 그 세상이 아닐 것이다. 모두에게 힘든 시절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장벽을 높이고 남 탓에 급급하고 편견과 이기주의에 눈이 멀어 합리적 이성이 마비되는 순간 어리석은 역사가 반복될 것이다. 이 모든 사태는 역설적으로 모든 인류가 공생(共生)해야만 하는 숙명을 새삼스럽게 일깨워주고 있다. 위기는 또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 운명공동체로서의 상생의 정신을 가다듬어 냉철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국제통상에 관한 세계질서의 틀을 가다듬을 절호의 기회로 삼아 한 걸음 더 전진할 수 있는 전기(轉機)가 되길 바란다.

 

 

노유경 부장판사(전주지법 군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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