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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단체소송과 변호사보수 패소자부담의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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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비자단체소송제도의 현황

소비자단체소송은 사업자의 위법한 행위로 소비자의 생명·신체 또는 재산에 대한 권익이 직접적이고 계속적으로 침해되는 경우에 그 행위의 금지·중지를 청구하는 소송이다(소비자기본법 제70조). 공정거래위원회에 등록된 소비자단체(16개), 전국규모의 사업자단체(4개), 한국소비자원, 소비자의 권익증진을 목적으로 하여 중앙행정기관에 등록한 비영리민간단체에게 원고적격이 인정된다.

소비자단체소송제도가 2008년 1월에 시행된 이래 현재까지 제기된 소송은 모두 8건이다(이 중 2건은 자진시정으로 소취하, 2건은 원고패소, 4건은 소송이 진행중이다). 대단히 미미한 결과이다. 우리보다 6개월 먼저 소비자단체소송제도가 시행된 일본의 예와 비교해보면 이점이 명확해진다. 일본에서는 2018년 4월 1일 기준으로 모두 17개의 소비자단체가 정부로부터 소비자단체소송을 제기하기에 적합한 단체(=적격소비자단체)로 인정되었는데, 이들이 위 기준시점까지 행위금지청구권을 행사한 사례는 모두 450여건이고 그중 53건에서 소송이 제기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일본에서는 행위금지청구권이 단체의 실체법상의 권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사업자가 금지청구에 응하지 않는 경우에만 소권을 행사하면 된다). 이를 우리나라와 비교해보면 우리나라의 단체소송 활용도가 현저히 낮은 상황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제도도입으로 사업자들의 위법행위가 감소한 것이라면 입법의 긍정적 효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장의 상황은 그리 한가롭지 못하다. 거래는 복잡화·전문화되고 있고 사업자들의 마케팅수법은 날로 교묘해진다. 합법과 위법의 경계선상에 있는 사업자들의 행위가 넘쳐나고 그 경계선을 넘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그렇다고 행정이 모든 위법행위를 감시하고 행정권을 발동할 수는 없다. 그와 같은 이유에서 시장의 감시자이자 소비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소비자단체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소비자단체소송제도가 도입된 것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 대단히 공익적인 것이다.


2. 변호사보수 패소자부담의 원칙

그렇다면 왜 소비자단체소송제도가 활성화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필자는 남소를 우려하여 지나치게 엄격하게 제도가 설계되었다는 점(소송요건의 엄격성, 불필요한 소송허가제의 도입 등)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졸저, 소비자계약의 법리, 506면 이하 참조). 그런데 최근에 제도의 활성화에 장애가 되는 또 다른 변수가 발생하였다. 한국전력을 상대로 한 ‘전기세 누진제 금지·중지청구소송’이 원고패소로 확정되자, 한국전력이 법원에 소송비용의 확정결정을 신청하여 법원이 소송비용을 변호사보수 포함 총 1,200여만원으로 결정한 것이다. 원고 소비자단체의 소송대리인은 1·2심 모두 무료변론을 하였다. 원고가 승소하였다면 그 변호사보수를 상대방에게 청구할 일은 없었을 것임에도, 원고가 패소하자 피고의 변호사보수를 원고가 부담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왜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일까? 그 이유는 소비자기본법에서 단체소송에서의 변호사보수 문제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민사소송법의 일반원칙을 적용하도록 하였기 때문이다(제76조 제1항).

민사소송법은 소송비용에 관하여 패소자부담을 원칙으로 한다(제98조). 소송비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변호사보수는 대법원규칙(「변호사보수 소송비용 산입규칙」)으로 소가(訴價)의 범위에 따라 소송비용에 산입되는 변호사보수액이 산정되는 구조이다(제109조). 변호사보수액 산정시 법원이 재량조정을 할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으나(위 규칙 제6조), 요건이 엄격하여(“현저히 부당한 경우”) 법원은 위 규칙에 따라 ‘기계적으로’ 변호사보수액를 소송비용으로 산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전력의 변호사보수 청구는 소비자단체소송제도의 활성화에 큰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상대방의 변호사비용까지 확보하고 있어야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신호라는 점에서 소비자단체의 활동을 더욱 위축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단체의 재정기반은 대단히 열악하다. 공익적인 업무를 수행함에도 공적 지원이 미진한 상황에서 패소의 부담을 무릅쓰고 소비자단체소송을 통해 시장을 감시하고 소비자의 권익을 확보하려는 활동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이것은 소비자단체소송제도를 도입한 입법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상황이다.


3. 외국의 상황 및 국내의 개선논의

미국과 같이 변호사보수 각자부담원칙을 채택하거나 영국이나 캐나다와 같이 소송비용에 관하여 법원에 폭넓은 재량을 인정하는 경우에는 우리와 같이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할 일은 없다. 독일의 경우 패소자부담을 원칙으로 하지만, 변호사보수가 법정되어 있고 저렴할 뿐만 아니라 소송비용보험이 널리 이용되고 있어서 패소자부담원칙이 큰 부담이 되지는 않으며(대한변협, “공익소송 등에서의 소송비용 부담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에 관한 심포지엄” 자료집, 2018.11.21.), 소비자단체의 경우 근본적으로 정부의 재정지원과 소비자보호재단의 운영으로 그 활동이 보장되고 있다(연방차원의 소비자단체의 경우 약 97%의 예산을 정부로부터 지원받는다). 한편 일본의 경우 각자부담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데, 그 이유로서 패소자부담의 원칙은 소제기를 위축시켜 재판청구권을 박탈시킬 가능성이 있고, 패소라는 일종의 결과책임에 기하여 일방적으로 변호사보수를 패소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과도한 제재로 합리성이 없다는 점 등이 거론된다(위 자료집).

우리나라의 경우 일본 민사소송법의 영향으로 변호사보수 각자부담원칙을 채택하고 있었으나 1981년부터 패소자부담원칙으로 전환하였다. 독일, 프랑스 등의 선진법제를 도입하여 승소의 실익이 없는 소송제도를 개선하고 남소의 폐해를 방지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런데 최근에 소비자단체소송과 같은 공익소송에서의 소송비용 패소자부담원칙의 문제점이 활발히 제기되고 있다(위 대한변협 심포지엄; 대한변협, “공익소송 패소비용 부담에 따른 공익소송 위축효과와 제도개선 모색 토론회”, 2020.1.8. 등). 이에 대해 대법원은 2018년 3월부터 6월까지 5차례 실시된 “시민단체와의 열린 간담회” 후에 “공익소송 비용 경감” 문제를 우선 검토해 개선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고(법률신문 2018.9.5. 기사), 법무부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최근 “공익소송 패소비용의 필요적 감면 규정 마련” 안건에 대해 심의하고 특히 사인간의 소송에서 공익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도 패소 당사자의 소송비용을 필요적으로 감면하도록 민사소송법 제98조, 제109조의 개정추진을 권고한 바 있다(법률신문 2010.2.10. 기사).


4. 개선방향

변호사보수 패소자부담원칙을 고수하는 한 장래적으로는 민사소송법 제98조와 제109조를 개정하여 공익소송 등에 대하여 그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예외 인정의 필요성, 예외를 인정할 공익소송 등의 범위 등을 둘러싸고 논의가 길어질 가능성이 있다. 민사소송법 개정이 부담스러울 경우에는 소비자단체소송제도를 두고 있는 소비자기본법을 개정하여 변호사보수에 관한 특칙(각자부담원칙)을 신설하는 것이 현실적인 해결방안이 될 수 있다.

또한 입법론에 의한 개선 이전이라도 「변호사보수 소송비용 산입규칙」 제6조 제1항을 보다 유연하게 해석·적용한다면 해석론에 의해서도 어느 정도는 문제해결이 가능하다. 위 규칙 제6조는 변호사보수의 소송비용 산입에 있어서의 법원의 재량조정과 관련하여 제1항에서 감액산정을, 제2항에서 증액산정을 각각 규정한다. 그런데 그 요건을 모두 “현저히 부당한 경우”로 하면서도 제2항에서만 “소송의 특성 및 이에 따른 소송대리인의 선임 필요성, 당사자가 실제 지출한 변호사보수 등”(이하 “감안요소”)에 비추어 ‘현저성’을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감안요소는 제1항의 감액산정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고려하는 것이 타당하다. 즉 ‘소송의 특성’(=공익소송) 및 ‘이에 따른 소송대리인의 선임 필요성’(=소비자기본법 제72조 변호사강제주의), ‘당사자가 실제 지출한 변호사보수’(=무료)를 감안하면 위 규칙에 따른 “(변호사보수) 금액 전부를 소송비용에 산입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다”고 판단하기가 훨씬 용이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법원이 현행 규칙을 유연하게 해석·적용함으로써 재량을 발휘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한 경우”의 의미를 “공정이나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해석하여야 한다는 대법원의 입장(대법원 2010.7.13. 자 2010마658 결정)에도 부합하는 것이며, 변호사보수 패소자부담원칙을 기계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소비자단체소송제도의 입법취지가 몰각되는 사태도 막을 수 있는 길이다.

최근에 사법개혁 논의가 한창이다. 사법개혁은 조직개편이나 인적 쇄신과 같은 거창한 담론보다는 불합리한 제도와 관행을 개선하려는 작은 실천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것이 제도 이용자인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길이다. 법원의 작지만 의미있는 실천을 기대한다.


서희석 교수 (부산대 법전원, 전 한국소비자법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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