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서초포럼

공동체의 안전, 개인의 자유

160909.jpg

회사가 종로로 이전하면서 2호선이 아닌 3호선을 애용하고 있다. 2호선을 탈 때는 시간은 짧았지만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는데, 3호선은 원래 그런지 아니면 코로나19의 영향인지 출퇴근 시간에 자리에 앉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하긴 도로의 교통도 이전보다 덜 막힌다고 하고, 백화점이나 시장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는 않는다 하니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우리의 삶을 한 순간에 뒤바꾼 듯 하다. 생소하던 '사회적 거리두기'도 이젠 일상화된 듯하고,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을 이용하여 타인과의 접촉 없이도 일상을 유지한다. 신도들의 사진을 놓아둔 채 미사를 진행하거나, 대형 주차장에서 차량에 탄 채 부활절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코로나19의 가공할 전파력 앞에 각국은 입국제한, 이동금지, 봉쇄라는 초유의 강경대책을 발동하고, 남녀 성별에 따른 요일별 외출제까지 시행하고 있다.

 

공동체의 안전은 개인의 희생을 수반한다. 공동체에 닥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공동체는 개인에게 자유를 양보할 것을 요구하게 된다. 뉴스에서는 통행제한 조치를 어기고 거리를 다닌다는 이유로 경찰이 시민을 폭행하는 어떤 나라의 모습이 나오기도 한다. 심지어 위반자를 사살해도 좋다는 나라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공동체는 그 구성원들을 떠나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공동체의 안전은 구성원들을 위한 것이며, 구성원 자신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정당성의 근거가 있다. 동시에 여기에 공동체가 개인에게 요구할 수 있는 희생의 한계가 있다. 최근 자가격리자에 대하여 손목밴드(안심밴드)를 착용하도록 하려다가 자가격리 위반자에 대하여 그 동의를 받아 착용하는 방식으로 되었다고 한다. 법률의 근거없이 '동의'라는 방식으로 시행하는 것이 문제가 없는 것일까? 공동체의 안전을 내세운 국가권력의 요구 앞에 개인의 동의가 자유의 제한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해 주기에는 너무나 미약한 것이 아닐까?

 

국가권력은 위기 앞에서 강화되고 독재화되기 쉽다. 코로나19의 극복을 위해 우리 모두가 힘을 모으고 불편을 감수하여야 하며 그것이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인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위기 극복과정과 극복 이후에 있어 공동체에 대한 거대한 위기 앞에서 어디까지 그리고 어떻게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여야 할 것인지 진지하게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19는 앞으로도 2년은 더 지속될 것이라고 하기도 하고, 이번과 같은 위기는 주기적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코로나19 이후 '거대권력에 지배된 질서있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느냐, '합의와 자율에 의한 질서있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느냐는 공동체 구성원인 우리에게 달려 있다. 국가권력에 의해 지시되고 통제되는 untact이 일상화된다면, 인간 고유의 본성이 사라지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날 직장과 거리에는 우리를 대신하는 '써로게이트(Surrogate)'들로 넘쳐날지도 모른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우리가 더욱 깨어 있어야 할 이유이다.

 

 

이상철 변호사 (법무법인 태평양)

리걸에듀

관련 법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