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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에 다가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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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진상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피고인 본인이다. 그 다음은 검사이고, 다음은 변호사이고, 끝으로 판사이다. 그런데 재판에서 판결은 판사가 내리고 판결의 효과를 적용받는 사람은 피고인이다."

 

법조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판사의 신중한 판단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흔히 인용하는 말이다. 판사로서의 경력이 더해 갈수록 예전에는 가벼운 이야기로 흘려들었던 이 말이 점점 더 무겁게 다가온다.

 

'나의 판단이 과연 진실에 부합할까? 틀렸을 가능성은?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형사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지금, 판결을 선고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러한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는 사건이 적지 않다. 혹시 무심코 지나친 단서가 있을까 하여 기록을 읽고 또 읽고, 증거들을 통해 드러난 단편적인 사실들을 이리저리 꿰어보지만 이런 사건에서 진실의 온전한 모습과 마주하기는 쉽지 않다. 판결을 선고하는 순간 피고인의 얼굴을 잠시 스쳐가는 표정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직감적으로 알게 되는 경험을 한 적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진실의 발견은 마음속에 영원한 미제로 남게 된다. 재판을 통해 진실을 발견하는 것이 판사의 사명이라지만 판사도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진실에서 멀어질 위험성을 안은 채 재판을 할 수밖에 없는 것 역시 판사의 숙명이 아닌가 한다.

 

인간은 스스로의 한계를 자각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진실을 추구할 때 비로소 진실에 다가설 수 있다. 실체 진실의 발견을 사명으로 하는 판사에게 자만은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생각과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같은 사람이라도 처한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일반적인 행동양식과 다르게 행동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사건에서 당사자의 말에 귀를 닫아버리고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기준에만 얽매여 사건을 바라보아서는 결코 진실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참을성 있게 당사자의 말을 들어주고, 때로는 피고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반대로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 보기도 하면서 스스로의 경계를 허물고 다양한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것만이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김규동 고법판사(서울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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