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법조광장

시장경제체제를 지키려면

160787.jpg

"10억 원을 주면 1년 정도 교도소에 가도 좋다고 생각하는가?"

 

몇 년 전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초등학생은 16%, 중학생은 33%, 고등학생은 47%가 “괜찮다”는 답변을 내놨다. 대학생이 되면 이 수치가 절반을 넘어선다. 51%의 학생이 그렇다고 한 것이다. 같은 물음을 성인들에게 던진다면 아마도 동의하는 비율이 훨씬 높아질 것이다.

 

학자들은 범죄의 원인을 여러 가지로 분석하지만, 실무를 하면서 느낀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화나 서운함과 같은 감정적 손상이고, 다른 하나는 돈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후자의 요인이 갈수록 커지는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겉으로는 이념적으로 보이는 공직선거법이나 국가보안법과 같은 영역에서도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범죄의 비중이 커졌다.

 

전통적으로 형벌은 응보형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전통적인 형벌만으로는 범죄를 억제하는데 한계를 보였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범죄수익을 환수해서 범죄를 억제하자는 것이었다. 이런 시도는 어느 정도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 특히 피해자가 다수이어서 없는 것처럼 보이는 범죄나 피해자와 가해자가 한통속으로 묶여 있는 범죄인 경우에 효과를 발휘했다. 성매매업자들이나 음란사이트 운영자들이 얻은 이익을 환수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러한 시도도 한계에 다다른 듯하다. 그것도 시장경제체제를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두 분야에서 시장경제체제를 이끌어가는 두 축은 신뢰할 수 있는 자본의 흐름과 차별된 기술의 보호라고 볼 수 있다. 전자는 주식으로 대표되고, 후자는 산업기술로 대표된다. 이 두 개의 축은 중요성이 매우 큰 만큼 이익도 커 새로운 범죄의 타깃이 되고 있다. 범죄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큰 반면 적발이 되더라도 범죄수익을 환수당할 우려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경제 체제를 지탱하는 두 축은

자본시장과 차별화 된 기술의 보호

범죄로부터 지키기 위한 대책 절실

 

산업기술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예로 들어보자. 세계적으로 친환경 자동차 기술을 선도하는 우리나라의 A기업에서 수소차 생산기술을 완성했다. 후발업체들은 A사의 기술을 빼내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고액의 연봉 등 금전적인 보상을 미끼로 핵심인력을 데려가 기술을 빼내려고 했다. 아무리 높은 임금을 주더라도 기술자를 빼내는 것이 기술개발에 소요되는 시간과 막대한 비용을 감안하면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이익이기 때문이다. 수사를 통해 해외업체로 이직한 기술자를 적발해 범죄의 전모를 밝혀냈다. 이것으로 성공적인 결과를 냈다고 볼 수 있을까.

 

이런 사건의 수사와 재판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먼저 처벌 자체가 산업스파이가 된 내국인에만 그칠 가능성이 많다. 범죄의 몸통인 해외업체에 대한 수사는 진행 자체가 어려워 범행 가담의 입증은 물론 처벌도 쉽지 않다. 설령 해외업체가 가담했다는 점을 밝히더라도 마찬가지다.

 

또 처벌이 대부분 단기 징역형이나 집행유예에 그친다. 겉으로 보기에 기술을 이전한 산업스파이가 받은 이익은 많아야 몇 억원을 넘지 않는다. 기술유출로 인한 막대한 이익은 기술자가 아닌 해외업체가 취득했기 때문이다. 피해가 실제로 눈에 보이지 않다 보니 사회적인 피해감정도 크지 않다. 결과적으로 범행의 중대성에 비해 훨씬 가벼운 처벌로 이어지게 된다.

 

제일 큰 문제는 범죄수익의 환수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기술을 빼돌린 업체가 어느 정도의 수익을 얻었는지 정확히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시세조종과 같은 증권범죄에 있어서도 동일하다. 그것이 정상수익인지, 시세조종으로 인한 불법적인 수익인지 판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작년 8월 20일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의 개정으로 산업기술 침해행위의 고의성이 인정되는 경우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배상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민사적인 책임에 불과해 진정한 의미의 범죄수익 환수라고 볼 수 없다. 범죄수익 환수를 위한 새로운 방법과 모델이 필요한 이유다.

 

당시 개정에서는 산업통상자원부와 국가정보원에 기술유출에 대한 조사권을 부여했다. 국가의 핵심기술이 해외로 유출되면 피해가 개인이나 기업 단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안보를 위협하는 전통적인 개념의 간첩만큼이나 산업기술을 빼내는 새로운 유형의 간첩이 더 위험한 이유다.

 

기존의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범죄 유형에 전통적인 형벌로만 대처해서는 절대로 범죄를 막을 수 없다. 시장경제체제를 지탱하는 두 축인 자본시장과 첨단기술을 범죄로부터 지키기 위한 법률가들의 연구와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양중진 검사(수원지검 부부장)

미국변호사

관련 법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