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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취재수첩] 신뢰받는 금융감독원이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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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이 은행을 상대로 로펌 자문내역까지 포괄적으로 요구하며 갑질을 하고 있다는 내용을 취재하면서<본보 4월 6일자 1,3면 참고>, 문득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1999년 하라다 마사토 감독이 연출한 '쥬바쿠(呪縛, 주술로 상대를 속박한다는 의미)'라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부정대출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된 아사히중앙은행(ACB)의 중간 간부들이 내부 개혁을 이뤄나가는 과정을 담았다.

 

인상 깊었던 장면은 은행원 '키타야마'가 대장성(현 재무성) 관료를 리무진에 태우고, 최고급 와인을 따라주며 접대하는 모습이었다. 안하무인의 젊은 관료에게 "제발 저희 은행을 살려달라"고 매달리는 모습은 왠지 낯설지 않았다.

 

과거 우리나라도 일본과 같은 '관치금융'의 폐해가 컸다. 이런 풍조는 자의적인 정책 집행이나 정경유착과 같은 폐단을 낳았고, 결국 IMF 외환위기를 초래했다. 이후 금융감독원이 설립되면서 금융권의 투명성과 효율성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관(官)' 우위의 고압적인 문화는 여전하다.

 

감독기관이 '대의(大義)' 실현에 자아도취되면 현장에서 법치주의가 자리잡는 데 큰 걸림돌이 된다. 피감독기관을 상대로 막강한 권한을 휘두를 수 있기 때문에 법이 정한 절차 따위는 거추장스럽다. 대법원 판결로 마무리 된 분쟁을 6년 만에 끄집어내 배상을 강요하는 일도 벌어진다.

 

금감원이 은행을 상대로 로펌 자문내역을 광범위하게 요구하는 건 더 심각한 문제다. 안정성과 수익성이 반비례하는 금융상품의 구조상, 손실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이러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법률전문가에 의한 검토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금융당국이 어떤 자문을 받았는지 은행을 상시적으로 감시하면서 이를 오히려 규제 도구로 삼겠다니. 법을 지키려고 했던 노력이 오히려 목을 노리는 칼이 되어 돌아오는 셈이다. 금감원의 검사는 이후 소송으로 전환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일체의 자료를 모두 넘길 경우 은행은 최소한의 방어권조차 보장받기 힘들다. 힘있는 기관일수록 위력으로 상대를 찍어누르는 패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행여나 권한을 남용하지 않을까 스스로 삼가하면서 적법절차와 사법제도를 존중할 때 최고 금융감독기관으로서의 권위도 더 세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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