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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You've Got 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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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내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 수가 증가함에 따라 3월말부터 ECCC는 전면 재택근무(telecommuting) 체제로 전환하였고, 이에 따라 기존 업무추진계획에 어느 정도의 변경이 필요할지에 대한 분석이 진행 중이다. 어느 정도의 차질은 불가피하겠지만, 그간 재판부 업무의 많은 부분이 전자파일링과 이메일을 통해 처리되어 왔기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기를 기대하고 있다. 

 

ECCC에서는 재판 자체를 이메일로 진행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예를 들면 서면의 제출기한, 분량, 번역, 공개범위 등에 관한 신청 및 답변, 그에 대한 재판부의 합의 및 결정이 이메일로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그 이메일들은 문서번호가 부여되어 전자 사건 기록에 포함되고 재판서에 인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관행에 익숙하지 않던 필자는 무심코 보낸 이메일이 나중에 기록에 첨부되어 제출된 것을 보고 놀라기도 하였다. 과거 완벽한 전자파일링 시스템이 마련되지 못했던 까닭도 있었겠지만, 이메일로 처리하는 데에 별다른 법률적, 현실적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영미법계를 예로 들면, 힐러리 클린턴의 이메일 스캔들에서 알 수 있듯이 공무원이 사용하는 이메일은 공공 기록물로 관리되고, 전자증거개시(E-discovery) 절차에서도 이메일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 사법부는 전자소송을 선구적으로 도입하여 많은 성과를 내고 있으나 새롭게 구축한 전자파일링 시스템 위주이고, 기존의 이메일 시스템에 독자적인 효력을 부여하여 재판의 도구로 간편하게 활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는 디지털 방식의 통신 전반에 대해서, 관련 기술의 빠른 발전에도 여전히 그 신뢰성이 낮다고 보는 입장인 듯하다. 디지털 증거에 대하여 강화된 증거능력 요건을 부과하고 있는 판례의 태도, 1995년에 이미 원격영상재판에 관한 대법원 규칙이 제정되었음에도 활성화되지 않고 있는 현실, 홈페이지에 로그인을 하면 어김없이 만나게 되는 수많은 보안프로그램과 공인인증서의 존재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응용수학자이자 컴퓨터과학자인 클로드 섀넌은 정보의 가치를 불확실성에 관한 수학적 확률로 계산해 냄으로써 디지털 통신의 이론적 기반을 만들었고 이는 결국 인터넷의 탄생과 발전으로 이어졌다. 어떤 형태의 정보이든 절대적 확실성과 신뢰성을 갖는 경우란 현실 세계에서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더 나아가 이를 증명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한편 국제인권법에서는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The Right to a Public Hearing)'에 관하여 재판당사자 개인의 이익 보장과 사법에 대한 공적 감시의 두 가지 목적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전자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후자는 재판 관련 정보의 투명한 공개를 통하여 상당 부분 보완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하는 등, 관련 협약이나 판례들의 입장은 다소 느슨하고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예를 들면, 미주인권협약(AHRC) 제8조 제5항에서는 형사소송에 한해서 이 권리를 일부 보장하고 있다. 

 

이른바 역병 후의 새로운 질서(New Normal)가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사법 작용의 측면에서도 구성원들과 소송당사자의 현실 대면을 최소화하고, 향후 우리 삶의 더욱 큰 부분을 차지해 나갈 디지털 세계를 보다 더 과감하고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인식의 전환과 지혜가 필요하다.

 

 

백강진 재판관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ECCC))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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