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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행기

[나의 여행기] '신의 나라' 그리스 다녀온 권오훈 변호사

형체만 남은 神殿에는 아직도 신들의 목소리 들리는 듯…

어린 시절, 그리스 신화를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 않았던 이가 있을까. 신과 인간이 서로를 질투하고 사랑하며, 영웅과 미녀가 모험을 떠나 성공의 기쁨과 좌절의 고통을 동시에 느끼는 곳. 나에게 그리스란 신들이 살아 숨쉬는 나라다. 신화가 텍스트로만 남게된 지금, 그리스는 과연 어떠한 모습을 보여줄 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아테네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아테네는 노을이 아름답다. 세계 곳곳에서 온 여행객들과 인사하며 리카비토스 언덕을 오르다보면 드넓은 대지를 둘러싼 산 봉우리로 지는 해를 바라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장관은 도심 한가운데 우뚝 솟은 아크로폴리스다. 아테네 시 곳곳에서 감상할 수 있는 아크로폴리스는 그 유명한 파르테논 신전이 건설된 언덕이다. 파르테논 신전은 무려 기원전 432년에 완공되었다. 전 세계 문화재를 연구하는 유네스코의 상징이 바로 파르테논 신전일 정도로, 파르테논 신전은 그리스 문명, 나아가 서양 문명의 핵심을 담고 있다. 2500년 전, 아테네를 방문한 외지인들은 과연 어떤 감상으로 아크로폴리스를 바라 봤을까. 경외심에 앞서 아테네 시를 수호하는 아테나 여신의 위용을 직접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건축은 신성(神聖)을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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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432년 완공돼 장구한 세월을 견뎌온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그리스 문명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이지만 수 차례의 전란으로 상당부분 소실됐다가 지금은 그리스의 정부의 노력으로 파편을 하나씩 모아 재조립하는 복원 절차가 진행중이다. 신전 앞에서 포즈를 취한 필자인 권오훈(37· 변시1회) 오킴스 변호사.

 

아테나 여신은 지혜의 여신이자 전략의 여신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중요한 전쟁이었던 트로이 전쟁에서 아테나는 주인공급 활약상을 보여준다. 단순히 힘만 센 전쟁의 신 아레스와는 달리 아테나는 지략으로 적들을 물리친다. 아테나를 모셨던 아테네 시민들의 지혜에 대한 자부심이 아테나 여신에게도 반영되었을 것이다.


노을이 아름다운 아테네 

 그 도심에 아크로폴리스


안타깝게도 파르테논 신전은 측면부가 심하게 훼손되었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파르테논 신전은 비교적 최근까지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비록 국가의 흥망성쇄에 따라 때로는 성당으로, 때로는 모스크로 탈바꿈 하긴 했지만, 보수 공사를 계속하면서 17세기까지는 비교적 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1687년, 베네치아와 전쟁을 하던 오스만 투르크군이 파르테논 신전을 화약창고로 사용하다가, 베네치아군의 공격에 의해 화약이 터지면서 측면과 지붕이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현대 그리스 정부는 날아간 파편 하나 하나를 주워서 재조립하는 지난한 문화재 복원 작업에 착수하고 있다. 현대 건축 자재로 금방 되살릴 수 있음에도, 굳이 어려운 복원 절차를 고수한다. 설립 당시 그대로의 모습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한 선택이다. 언젠가 우리 후손들은 2500년 전의 자재들로 다시 완성한 파르테논 신전, 그리고 그 안에 살아 숨쉬는 아테나를 접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고대 그리스가 서양 문명의 시발점인 만큼 파르테논 신전은 많은 서양 건축물의 모티브가 되었다.그런데 미국 내쉬빌에는 파르테논 신전을 그대로 1:1로 복제하여 만들고, 그 안에는 지금은 소실되어 사라진 아테나 여신상까지 모셔 놓았다고 하니 과연 미국 답다는 생각이 든다. 


심하게 훼손 된 파르테논 신전은

지금도 복원작업


아크로폴리스는 아테네 곳곳에서 감상할 수 있는데, 그 중 소크라테스의 감옥에서 바라보는 모습 또한 장관이다. 소크라테스가 사형 직전까지 있었다고 전해지는 이 감옥은 필로파포스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스 아테네의 최전성기였던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활약한 소크라테스는 청년들을 타락시킨 죄로 기소되었다. 소크라테스는 달변가였으므로 자신의 무죄를 강력히 주장할 능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는 배심원의 심기를 자극해 사형을 선고 받고 만다. 그의 제자인 플라톤이 쓴 <크리톤>에서 소크라테스는 그의 탈출을 종용하는 크리톤에게, 소크라테스는 판결이라는 국가의 결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에게 정의란 무엇이었을까? 그에게 법치주의란 일단 정해진 규칙을 맹목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국가주의적 사고였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에게 국법과 국가와의 관계에서 도망치는 것은 부정의라고 하며 이렇게 말한다. “(도망친다는 것은) 법에게 복종하기로 합의하고서, 복종하지도 않고, 법이 뭐가를 잘못하는 경우 법을 설득하지도 않는 것이기 때문이오” “법은 법을 설득하든지, 아니면 법이 시키는 대로 하든지 양자택일 하라고 제의할 뿐인데, 도망치는 자는 어느 것도 하지 않으니 말일세.” 소크라테스와 같은 아테네 시민들에게 국가의 정의는 설득과 논변으로 이루어졌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과정인 정치가 실종된 우리 세대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神의 도시 델포이

 무녀는 어떻게 신과 소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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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포이 유적지 한 가운데 있는 '옴파로스'의 모습. 배꼽이라는 의미의 옴파로스에서는 세계의 중심이 그리스라고 생각했던 고대인들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아테네를 떠나 도착한 곳은 신의 도시, 델포이다. 광활한 대지에 펼쳐진 올리브 나무 과수원을 감상하며 몇시간을 달리다 보면 델포이 유적에 도착한다. 델포이 유적은 지금 보아도 신비로운 기운이 감도는 산능선에 건립되었다. 우리로 치면 산 속에 세워진 고즈마학 절터 같은 느낌이다. 델포이는 아폴론을 모셨던 곳이다. 태양의 신 아폴론의 예언을 듣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모여들었는데, 특히 중요한 국가적 결정을 하기 전 델포이를 찾았다고 한다. 델포이의 무녀들은 어떻게 신들과 소통을 했을까? 현대인의 눈으로는 단순히 돌 조각에 불과한 석상들이, 그리스 시대 사람들의 눈에는 신 그 자체로 보이지는 않았을까. 델포이의 신전에 방문한 세계인들이 진심을 담아 원하는 예언을 바라는 모습을 눈을 감고 상상해본다. 아폴로 신의 근엄한 손길이 머리 위에 닿는 듯한 느낌이다.


델포이 가운데에는 옴파로스라고 불리는 돌이 있다. 배꼽이라는 뜻이다. 세계의 중심이 여기에 있다는 자부심이 느껴진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관광객이 손을 대서인지 맨들맨들하게 닳은 이 검은 돌은 제우스가 심어 놓았다. 많은 이들이 옴파로스를 만지며 세상의 중심을 만끽하고, 또 각자의 소원을 빈다. 수천년 전부터 이어지는 의식이다. 강력한 문화의 힘은 시대를 초월함을 느낀다.

 

맨들맨들 닳은 돌

‘옴파로스’에 손을 얹고 소원 빌어 


델포이를 떠나 또 몇시간을 버스 타고 이동하면 메테오라라는 지역에 도착한다. 아테네와 델포이가 고대 신들의 도시였다면, 메테오라는 기독교의 신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고대 그리스 이후 그리스 도시 국가들은 많은 외세에 시달렸다. 로마 병합 이후 동로마 제국의 변두리로 남았던 그리스는 세르비아, 불가리아, 베네치아 등의 중세 유럽 세력의 영토가 되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는다. 19세기 초반까지 오스만 제국의 일부였던 그리스는 지금까지도 오스만 투르크의 후예인 터키와는 철천지 원수 사이다. 메테오라에는 세르비아인들이 그리스에 침입하던 1356년 경 건설된 메갈로 메테오라 수도원을 시작으로 수십개의 공중 수도원이 건설되었다. 메테오라는 공중에 떠 있다는 뜻의 그리스어다. 이 곳의 수도원은 절벽에 지어져, 말 그대로 공중에 있는 듯한 기분을 준다. 속세와 고립된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은 청빈하게 지내며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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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리니의 하얀색으로 덧칠한 주택과 호텔들의 외벽이 지중해의 코발트색 바다 빛깔과 잘 어우러진다.

 

많은 외지 사람들이 그리스에서는 그리스 신화를 떠오르지만, 현대 그리스인들은 실제로는 독실한 크리스트교 신자다. 로마 제국의 공용어였던 고대 그리스어의 영향력은 현대 영어에 못지 않다. 비록 서로마제국의 영향으로 중세의 공용어는 라틴어였지만, 그 전까지 그리스어는 세계 공통어로 사용되었다. 크리스트교 성경인 신약성경도 때문에 그리스어로 쓰여졌다. “크리스트”란 말도 기름부운자를 뜻하는 히브리어 “메시아”의 그리스어 번역이다. 때문에 크리스트교의 수호자임을 그리스인들이 자처한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메테오라에서는 그리스인들이 가진 종교적 자부심을 물씬 느낄 수 있다. 중세에 그려진 벽화가 놀라우리만치 잘 보관된 실내를 보고 있자면 성스러운 종교 시설 보존을 위해 얼마나 애를 썼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물자를 잘 공급받을 수 있는 도시와는 달리 깊은 산속에 듬성 듬성 공중에 떠 있는 이 수도원들이 지어졌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신들의 나라 그리스. 그리스는 서양 세계의 철학적 바탕이 된 그리스 로마 문화의 태생지인 동시에, 서양 세계의 신학적 중심이 된 히브리 문화의 중심지라는 자부심이 가득하다. 물리적 인과관계가 철학과 사고를 지배하게 된 현대인들에게 그리스는 영감 가득찬 상상력을 제공한다. 이제는 돌덩어리로만 남게된 쓰러진 신전터 한 가운데에 서 보자. 그 안에서 눈을 살며시 감고 어렸을 쩍 신화를 떠올려 보면, 아직도 그리스에서 살아 숨쉬는 신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권오훈 변호사 (법무법인 오킴스)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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