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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의 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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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미터'는 미터법에 따라 빛이 진공에서 2억 9979만 2458분의 1초 동안 이동한 길이라고 한다. 이처럼 객관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1미터는 각자의 사정에 따라 그 의미가 주관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나에게 1미터는 입수가 가능한 극한의 수심이다.

 

필자는 대한변호사협회에 해상(海商) 분야를 전문으로 등록한 해상전문변호사 16명 중 한 명이다. 심지어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이전에 상선에서 항해사로 근무한 경험까지 있으니, 의뢰인들은 나를 만나면 으레 물개처럼 수영을 잘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바닷물에 빠져 생사를 넘나든 경험으로 인해, 1미터를 넘는 수심을 보면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 '수영무능력자'이다.

 

누구나 직접 대상을 인식하기 전부터 특정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 갖는 믿음, 태도, 가치 등이 존재하고 이를 기초로 선택하고 행동하는데,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인식의 '주관성'이라고 말한다.

 

수년간 변호사로 일하면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인식의 주관성을 가장 뚜렷하게 느낄 때가 있는데, 공교롭게도 의뢰인과 사건에 대한 첫 번째 회의를 진행할 때이다. 사실관계 자체에 대한 인식은 본인의 경험에 기초하여 객관적일 수 있지만 그에 대한 판단은 사실 주관성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회의를 진행하면서 의뢰인으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는 "억울하다"라는 말이다.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 들어보면 진짜 억울한 일이 있는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의뢰인의 상대방도 동시에 억울한 일이 있을 것 같아, 판사 앞에 찾아가기 전에 나를 찾아와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도 한다.

 

변호사는 의뢰인이 사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의 주관성을 객관화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변호사가 의뢰인이 억울하다고 하여 그 주관성을 그대로 안고 소송을 하면 절대로 상대방을 이길 수 없다. 그 사실을 상대방도 알고 판사도 알기 때문이다.

 

판사만이 정의의 여신이 든 저울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저울에 매달린 추가 공평한 자리를 찾아가야지만 승리에 가까워질 수 있으니, 우리 변호사도 정의의 여신이 든 저울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변호사 배지에 저울이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성우린 변호사 (법무법인 대륙아주)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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