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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취재수첩] 기대 못 미치는 '의료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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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의료사건만큼 재판부가 판단하기 어려운 사건도 없을 겁니다."

 

현행 의료감정시스템을 둘러싼 '늑장 감정', '부실 감정' 논란을 취재하면서 만난 모 부장판사가 한 말이다. 우리나라 최고 엘리트 집단으로 평가받는 법관들조차 '당부당(當不當)'을 판단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의료사건은 어렵다. 의사가 진료기록에 쓰는 전문용어는 뜻을 이해하기는커녕 읽는 것조차 버거울 때도 많다.

 

의료사건에서 진료기록감정이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감정결과는 의료과실 책임을 규명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인데다, 고도의 전문성까지 요구되는 분야라 감정 의사의 판단에 따라 재판 결과가 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소송당사자와 법률대리인인 변호사들은 감정 의뢰서의 질문 하나를 만들기 위해 몇날 며칠을 고민하기도 한다. 

 

하지만 의료감정의 현실은 국민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실정이다. 평균 6개월 이상 걸리는 늑장 회신에, 부실 감정까지 빈번해 병원에서 의료사고로 몸을 다친 사건 당사자들이 법원 소송에선 화병을 앓기도 한다.

 

의료감정 촉탁기관인 대한의사협회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감정의 신속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 의료감정원을 신설했지만, 아직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상근 임직원에 의한 감정이 아닌, 협회 학술국을 거쳐 각 학회로 재위탁이 이뤄지는 복잡한 구조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의료감정원에서는 문항 숫자에 따라 감정료를 차등 청구하기 때문에 감정 의뢰인의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이때문에 의료감정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감정을 하는 전문 의료진의 노동 대가를 합리적으로 보상하면서도, 소송 당사자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등 공공의료기관의 독자적인 감정 역량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재원의 감정은 비교적 신속하게 이뤄지는데다(소요기간 120일), 각 감정부에서 책임지고 감정을 진행하는 구조라 전문성과 투명성을 고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정하고 신속·정확한 감정시스템을 확립하는 일은 환자나 의료진은 물론 국민의 재판 받을 권리를 신장시키는 주춧돌인 만큼 개선이 시급하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