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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조정의 활성화를 위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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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법원의 민사조정에 더하여, 검찰의 형사조정은 물론 60개 정도 행정기관의 행정조정을 시행하고 있어서 일견 조정공화국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2019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8년 국내에서 하루 평균 1만8042건의 소송이 제기되었다. 이렇게 한국이 여전히 소송공화국인 현실은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제도화된 조정이 올바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정이 제 기능을 하고 있다면 이런저런 수많은 분쟁이 법원에까지 도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조정과 중재는 재판의 시간과 비용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대체적 분쟁해결(ADR, 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인데 국내에서 조정 등 ADR이 기대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국내에서 조정은 조정대로 소송은 소송대로 하다보니 중복적으로 고비용이 발생하고 있다. 조정이 분쟁해결의 적절한 수단으로서 활성화되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1. 조정 개념의 올바른 이해

법원의 조정은 1990년 9월 시행된 민사조정법에 따르고 있고 대한상사중재원은 1966년 3월 설립되었으니 국내 ADR의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그럼에도 아직도 중재와 조정의 개념이 올바로 이해되고 있지 않는데, 언론에서 중재라고 표현하는 상황은 실제로 조정인 경우가 많다. 예컨대 언론은 미국과 북한의 관계 정상화에 있어서 한국의 역할을 중재라고 보도하는데 여기서 중재는 실제로는 중개 또는 조정이다. 중재와 조정은 분쟁해결에서 제3자가 개입하는 공통점을 가지지만 중재인이 법적 구속력 있는 결정을 내리는 점에서 중재는 재판에 보다 가깝고 조정인이 분쟁당사자들이 협상을 통해 스스로 해결하도록 도와주는 점에서 조정은 협상에 보다 가깝다. 한국의 역할은 미국과 북한이 만나게 하거나 한발 더 나아가 둘이 해결책을 찾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지 법적 구속력 있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2. 조정기본법의 제정
국제거래에서 발생하는 상사분쟁의 조정을 통한 해결을 촉진하기 위하여 2019년 8월 7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UN조정협약의 서명식에서 한국은 동 협약에 서명하였다. 국제상사분쟁의 '조정을 통한 합의'에 집행력을 부여하는 동 협약의 비준을 위하여 가칭 조정기본법이 제정될 필요가 있다. UN조정협약의 이행을 위하여 채택되는 조정기본법은 국내에서 올바른 조정의 활성화를 위한 중요한 전기가 될 것이다. 즉, 조정기본법은 사적자치에 근거한 분쟁해결을 지향하는 방식으로서 조정의 개념과 관련 절차 등 조정의 기본을 규정하게 된다. 동 협약의 채택과 함께 UN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는 국제상사조정에 적용될 조정모델법을 채택하였는데 조정기본법은 동 모델법의 내용을 충실히 반영하면 될 것이다. 동 모델법에 따른 조정은 조정인의 도움을 받아 분쟁당사자들이 협상을 통하여 스스로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어서 분쟁 당사자가 주연이 되고 조정인은 조연이 된다. UN조정협약의 비준에 따른 조정기본법은 상거래 등 일반적인 분쟁의 조정에 적용될 것이어서 민사조정법이 적용되는 법원의 조정을 포함한 현재의 국내 조정제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조정의 국제표준을 반영하게 되는 조정기본법은 국내 조정제도가 사적자치에 부합하는 분쟁해결제도로서 발전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최근 조정산업을 진흥하자는 취지의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는데 조정의 근간이 법적으로 정비되지 않은 현실에서 조정을 산업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보인다. 일단 UNCITRAL 조정모델법을 반영한 조정기본법의 채택이 급선무이다.


3. 일반인 조정 수행의 제도화

조정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는 조정이 중재처럼 수행되는 것이다. 재판이나 중재에 더 익숙한 변호사 등 법조인이 역설적으로 이러한 현상에 기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재나 재판은 적대적 관계에 있는 분쟁당사자들에게 법에 따른 해결을 강제하는 것인데 조정은 분쟁 당사자들이 조정인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중재나 재판의 결과 당사자들의 관계는 절단되기 쉽지만 조정의 경우 당사자들의 관계는 계속 유지되거나 발전할 수 있다. 이렇게 조정과 중재는 서로 다른 분쟁해결 DNA를 가지고 있어서 중재를 잘 한다고 반드시 조정도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점에서 변호사 등 법조인이 반드시 훌륭한 조정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특히 취약한 민간조정이 활성화되기 위하여 조정인이 더 확보되어야 하는데 법이나 소송을 잘 모르는 일반인도 합리적이고 사회경험이 많으면 훌륭한 조정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변호사법 제109조에 따르면 조정이 '그 밖의 법률사무'에 해당하여 변호사가 아닌 일반인의 조정은 처벌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현재의 제도권 내에 포함되지 않는 민간조정은 허용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지방자치단체는 층간소음 등 현실의 민생분쟁에 대하여 다양한 유형의 조정제도를 도입하고 있고 시중에서는 상담이라는 이름으로 용감하게(?) 조정이 실행되고 있다. 마침 일본은 변호사법에 대한 예외로서 ADR에 관한 특별법에서 변호사가 아닌 일반인도 조정을 수행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다. 우리도 위에서 검토한 조정기본법에 조정인이 되는 자격에 관한 규정을 두고 변호사는 물론 일반인도 조정인이 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다만 변호사는 물론 일반인도 조정인이 되기 위하여 조정에 관한 소정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렇게 일반인도 조정인이 되는 민간조정이 활성화되면 규모가 작은 사건들이 소송단계에 이르기 전에 해결될 수 있고 그만큼 법원의 재판 부담도 감소하여 국가 차원에서 관련 사회적 비용이 감소될 수 있다. 또한 조정에 일반인이 참여하는 기회가 증가하면 이에 따른 사회봉사 내지 취업의 기회도 확대될 수 있다. 


4. 국제상사조정에의 적극적 참여

UN조정협약이 발효되면 국제상사분쟁은 중재보다는 조정을 통하여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조정에 따라 분쟁당사자들이 서로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여 상생의 합의를 도출하고 합의에 집행력이 부여되면 조정의 가치가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에 기업들은 중재에 따른 법적 구속력 있는 결정은 물론 시간과 비용의 부담도 느끼고 있다. 이렇게 국제상사분쟁에서 조정의 효용성이 부각됨에 따라 특히 홍콩과 싱가포르는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유리한 환경에서 아시아에서 국제조정 서비스 제공의 허브가 되기 위하여 경쟁을 하고 있다. 한국도 아시아에서 국제조정의 허브가 되고 싶지만 당장의 국내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는 우선 대내적으로 국제조정에 투입될 수 있는 영어를 잘 구사할 수 있는 조정인들을 양성할 필요가 있다. 대외적으로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국, 중국, 일본 및 러시아 등 극동 지역 내 국제상사분쟁을 조정을 통하여 해결하는 협력 체제의 마련이 현실적이다. 한국조정학회가 지난 3년 동안 매년 개최한 아시아태평양조정컨퍼런스에 참가한 국내외 조정전문가들은 이러한 접근을 지지하였다. UN조정협약으로 활성화될 국제상사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하여도 국내 조정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5. 정부의 지원 역할 강화

조정기본법 제정을 포함하여 올바른 조정제도의 활성화에 있어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나 정부는 조정의 활성화를 지원하는 것이지 이를 주도하여서는 안 된다. 중재와 달리 분쟁해결의 임의적 성격을 가지는 조정은 일정한 자격의 조정인이 분쟁당사자들을 위하여 독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진행할 수 있으면 된다. 정부는 조정기본법을 제정하여 올바른 조정의 법적 기반을 확립하고 국내 조정제도의 건실한 운영에 대한 일반적인 감독기능을 수행하면 될 것이다. 정부는 올바른 조정인이 양성되도록 조정인 교육을 지원하고 기업을 포함한 우리 국민이 조정제도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도록 계도할 수 있다. 국내에서 50년 넘게 사실상 독점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상사중재의 국내외에서의 실적과 위상은 조정의 올바른 활성화에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정부는 분쟁해결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차원에서 국민을 위한 조정이 자율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하면 될 것이다.

6. 결어

2019년 서명된 UN조정협약의 발효로 국제상사분쟁의 조정을 통한 해결이 증가될 것인데 한국이 동 협약을 비준하면 조정기본법의 제정 등 국내법의 정비가 필요하고 이러한 국내외 법제도적 변화는 국내 조정제도의 발전에 중요한 전기가 될 것이다. UNCITRAL 조정모델법을 반영한 조정기본법이 제정되어 국제표준에 따른 조정이 국내에서도 활성화되면 분쟁해결의 사적자치가 실현되고 궁극적으로 법원에서의 소송 남발도 감소될 수 있다. 이제 국회·법원·행정부는 물론 조정의 전문가들이 지혜를 모아 국내 조정제도의 활성화를 위하여 크게 노력해야 한다.

 

 

박노형 교수 (고려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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