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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불평등하게 다가온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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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저서 '위험사회'를 특징적으로 요약한 표현이다. 산업화로 빈부격차는 더 벌어져 가지만, 산업화의 부산물인 재난의 위험이나 기후위기와 원전사고 같은 후기산업사회의 위험은 성별, 사회계층, 세대 등 차별 없이 민주적으로 동등하게 퍼져 영향을 준다. 누구도 오염된 비와 공기를 비켜갈 수 없다. 위험에는 경계도 없고 국경도 없다. 보호막과 안전망도 소용없다. 그래서 위험으로부터의 공포와 불안은 커져만 간다. 지금 신종바이러스의 무서운 전파력으로 시민의 불안감은 고조되고 있다. 공포와 혼란의 연속이다. 물론 전염병은 산업사회의 산물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산업화와 세계화로 그 전파속도는 빛의 속도다. 산업화 과정에서 파괴된 자연생태계가 원인일 수 있다는 점에서 후기산업사회의 위험원과 닮아 있기는 하다. 그리고 그 위험에 너나없이 민주적이고 평등하게 노출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같은 종류의 위험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노출된 위험에 대처하는 방식과 능력에는 차별이 있다. 위험노출에는 평등하지만 위험대처는 비민주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위험도 빈곤처럼 위계적이다. 코로나19의 피해가 노인이나 장애인, 열악한 거주시설 입소자 등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들은 재난 앞에 무방비로 놓여 있다. 열악한 거주환경이 바이러스 확산을 촉발한다. 누구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능하지만 누구는 먹고 살기 바빠 잠시 멈춤이 허락되지 않는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사람도 있지만 누구는 혼잡한 대중교통을 이용해 일터로 나가야 한다. 코로나19 이전의 생활방식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갈린다. 택배서비스를 이용하는 자와 그러지도 못하는 자가 나뉜다. 후자는 전염병의 위험에 불안하지만 바이러스에 노출될 위험을 피할 길이 없다. 누구는 공기청정기로 스모그를 피할 수 있지만 누구에게는 황사마스크도 사치일 수 있다. 이상기온을 에어컨으로 견뎌내는 자도 있지만 누구에게는 선풍기도 벅차다. 코로나 격차이고 기후위기 격차다. 이처럼 다 같이 평등하게 위험에 노출되어도 위험대처는 제각각이다. 불평등하고 차별적이다. 예방능력은 빈부격차만큼 차이가 난다. 감염의 위험성으로 인한 불안과 혼란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다가오지만 경제적 불평등이 코로나19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위험대처능력의 차이는 국가가 메워주어야 한다. 위험은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다가가지만 정도와 속도에서 차이가 난다. 사회의 가장 약한 부분을 먼저 찾아가 영향을 크게 미친다. 약한 부분을 보강하고 영향을 줄이는 것이 사회복지국가의 임무다. 안전욕구는 사람의 필수적 욕구다. 누구나 건강하고 안전한 상태에서 자유롭게 삶을 누리기를 원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회적 취약계층이나 약자와의 거리를 벌려 놓는 결과를 낳아서는 안 된다. 감염의 두려움에 더해 고립 소외의 불안감을 더해주어서는 안 된다. 그들과의 공감적 거리는 좁혀야 한다. 비슷한 전염병 유행이 되풀이 될 것이라는 전문가의 경고다. 코로나19 이후 소외계층의 생존권, 최저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부조프로그램 등 사회복지정책뿐만 아니라 전염병 방역체계와 보건의료체계, 의료의 공공성이 단단해지고 촘촘해지도록 재점검해야 한다.

 

 

하태훈 교수 (고려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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