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서초포럼

The Blind Side

160012.jpg

40여년 전 벌어진 캄보디아 크메르 루즈 학살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당시 전 인구의 3분의 1에 가까운 사람들이 동족의 손에 의해 처형당했음에도 별다른 내부 저항의 움직임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크메르 루즈는 과거 정권의 공무원과 군인, 이슬람교 및 불교도들, 그리고 베트남 및 중국계, 기타 소수민족을 포함하는 ‘외국인’ 등 몇몇 그룹으로 ‘국가의 적(敵)들’을 설정한 후 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선별하여 처형하거나 강제수용소에 보내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크메르 루즈에 의해 끌려 간 사람들은 마을 인근의 들판이나 숲에서 처형된 후 바로 그 자리에 집단으로 매장되었는데, 그들의 비명이 마을에 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 선전 가요가 확성기를 통하여 큰 소리로 계속 방송되었고, 마을 사람들은 자신이 그들과 같은 그룹에 속하지 않은 사실에 안도하면서 사라진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으려 노력하였다고 한다.

 

암을 두 번 극복하였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백혈병과 치열하게 싸운 수전 손탁은 에세이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질병에 대한 이해나 통제가 어려울수록 그것이 어떠한 잘못에 대한 심판이라거나 특정 성격 내지 기질의 결과라는 등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 비난하는 사고방식이 지속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하여 온 전염병에 대해 과학적으로는 점차 발전된 대처방안이 마련되었음에도, 인간의 본능적 공포에 따른 감염자들에 대한 혐오, 차별과 배제는 어김 없이 반복되어 온 것이다.

 

알베르 까뮈는 소설 ‘페스트’에서, 흑사병의 창궐에 따라 도시가 봉쇄된 후 직업에 따른 다양한 대처방식을 그려낸다. 가톨릭 사제는 신의 뜻에 운명을 전적으로 맡기자고 설교하고, 기자는 경비대에 뇌물을 주고 탈출을 시도한다. 판사는 질서 유지에 협조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수용소에 머무는 반면, 범죄자는 불법적인 사업을 위하여 질병이 더 확산되기를 바란다. 공무원은 정확한 통계 작업을 성실하게 해내고, 일부 의사는 남다른 사명감으로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지만, 자원봉사대를 이끄는 의사인 주인공은 영웅주의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변함없이 계속해 나가는 덕목(l'honnetete)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Blindness)’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실명(失明) 현상이 전염병처럼 번지자 사람들이 본능에 굴복하여 짐승처럼 변해가는 지옥도를 그려내면서도,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연대와 협력, 그리고 존엄성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크메르 루즈가 꿈꾸었던 순수 캄보디아 농민이나 나치가 내세웠던 순수 아리아인 혈통이란 현실에서 결코 존재할 수 없었으나, 이러한 순수와 오염의 대비 이미지는 타자를 부정하고 배제하는 매우 효율적인 수단이었다. 2003년 뉴욕 사람들이 대규모 정전 사고를 통해 비로소 밤 하늘의 은하수를 볼 수 있었던 것처럼, 모두가 눈이 먼 세상은 이러한 인위적인 구별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할 수 있었다.

 

앞으로 인류에게 주기적으로 찾아 올 것으로 보이는 현재와 같은 재난이, 그동안 우리가 보지 않으려 했던 것을 깨닫게 해 주는 기회가 될 것인지, 아니면 내가 그들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존욕구를 더욱 강화할 것인지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레베카 솔닛이 세계 여러 재난현장에서 발견하였다는 ‘지옥에서 천국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존재를 더 많이 확인하고 싶어지는 요즘이다.

 

 

백강진 재판관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ECCC))

리걸에듀

관련 법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