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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국민의 법령 접근성에 대한 국가의 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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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무지는 용서되지 않는다(Ignorance of the law is no excuse)"는 법언이 있다. 이는 영미법의 기본 원칙 중 하나로서, 법을 위반한 사람이 그 법을 몰랐더라도 위법성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국민이 법 위반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법에 대한 무지를 주장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 같이 방대한 분량의 법령이 수시로 제·개정되어 법률전문가조차도 속속들이 법을 알기 어려워하는 '법령 홍수' 시대에 일반 개인에게는 너무 가혹한 법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법령은 국민의 모든 생활관계를 파고든다. 출퇴근길에는 '도로교통법', 직장에서는 '근로기준법', 심지어 집에서도 층간소음과 흡연에 관해 '공동주택관리법'이 적용된다. 때문에 법령 수는 증가하고 내용도 다양해지면서, 개인이 법령을 찾고 법령 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법의 무지'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오히려 국민의 '법의 무지'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더욱 무겁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민주국가에서 법은 국민 권리 실현과 의무 준수의 기준이 된다. 주권자로서 국민은 법령정보를 제공받을 정당한 권리가 있고, 국가는 정확한 법령정보를 신속히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에 법제처는 법령정보를 제공받을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법령정보 관리와 제공에 관한 국가의 의무를 명확히 하기 위해 법률의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2018년 3월에 정부가 발의하여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법령정보의 관리 및 제공에 관한 법률안'은 법령정보의 제공에 대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의무의 효율적 이행을 위하여 법제처가 기본계획 수립을 비롯한 법령정보 관련 정책을 추진하도록 하는 내용도 법률안에 포함되어 있다.

 

법제처는 이미 1998년부터 법령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대국민 서비스를 하고 있다. 국가법령정보센터를 통해 400만 건이 넘는 법령정보를 제공하고 있는데, 현재 일평균 이용자가 50만 명에 달하는 등 국민들의 호응이 뜨겁다. 하지만 법령정보의 수집·제공에 관한 법적 근거가 없어 행정규칙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조례·규칙은 제·개정 즉시 수집하여 제공하기 어렵고, 입법과정의 자료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국민들은 여전히 필요한 정보를 찾기 위해 여러 기관의 홈페이지를 일일이 방문하는 수고를 해야만 한다.

 

또한, 현재 여러 행정기관에서 생산되는 법령정보를 각각 개별적으로 제공하고 있어 예산이나 행정력이 낭비될 뿐 아니라, 법령정보의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관리도 어렵다. 결국 국가의 발전과 함께하는 역사적 기록물로서의 법령정보 보존도 곤란한 상황이다.

 

'법령정보의 관리 및 제공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여 본격 시행되면 앞으로 국민들은 필요한 법령정보를 찾고자 여기저기 홈페이지를 헤매지 않아도 된다. 법률 지식이 없이도 누구나 행정규칙과 자치법규를 포함한 최신 법령과 법령 입안과정의 정보를 한 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된다. 또한, 법제처에서 수집·관리하는 법령정보는 공신력 있는 공공데이터로서 리걸테크(Legal tech) 등 신산업 발전을 위한 공공자산이자 후손에게 물려줄 역사적 사료로 활용될 수 있다.

 

시시때때로 바뀌는 복잡한 법령정보의 파악을 더 이상 국민의 몫으로 돌릴 수는 없다. 진정한 법치주의는 누구라도 법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그리고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함을 전제로 한다. 그래야 국민이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법령정보의 관리 및 제공에 관한 법률'은 법령정보의 관리와 제공에 관한 국가의 책무를 충실히 이행하여 진정한 민주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법률안의 국회 심의 절차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이를 위한 법적 토대가 빠른 시일 내에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김형연 법제처장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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