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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생활

[나의 문화생활] ‘툴루즈 로트렉’ 展을 보고

대담하면서도 해학적… 포스터를 예술의 장르로 끌어올린 화가
19세기 말 몽마르뜨의 밤 문화에 대한 담담하고 따뜻한 애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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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소설가가 되고픈 남자주인공이 파리의 밤거리를 헤매다 우연히 차를 얻어 타고 1920년대로 간다. 거기서 헤밍웨이, 거트루드 스타인, 핏츠제럴드 부부 등의 유명 작가와 예술가들을 만난다. 자신의 동경하던 시대에 와서 너무나 행복한 주인공은 거기서 만난 여인과 파리의 밤거리를 헤매다 또 우연히 마차를 얻어 타고 1890년대로 간다. 1920년대에서 온 여인은 자신이 동경하던 벨 에포크로 와서 너무 행복하다며 1920년대로 돌아가길 원치 않는 것을 보고 주인공은 현실에 대한 불만으로 과거를 동경했던 것임을 깨닫는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과거를 두 번 거슬러 1890년대에 가서 만난 유명한 예술가 중 한 사람, 드가와 고갱에게 둘러싸여 테이블에 앉아 있던, 동그란 안경을 쓰고 덥수룩한 턱수염을 한 작은 남자가 바로 툴루즈 로트렉이다. 


툴루즈 로트렉은 유서 깊은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요샛말로 ‘금수저’였지만 선천적으로 뼈가 약했고, 청소년기에 양 쪽 대퇴골이 번갈아 부러지는 부상을 입으면서 다리 성장이 멈춰 버렸다. 개인적으로는 짧은 하반신을 가진 단신으로 살게 되었고 장애를 가진 아들을 외면한 아버지를 둔 아픈 사연을 가졌다. 하지만 ‘다리가 길었더라면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것’라고 한 로트렉 본인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그 비극 덕분에 훌륭한 예술가를 얻었으니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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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로트렉이 자신의 삶을 비극이라고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부유한 귀족으로 태어났지만 장애를 갖게 되었고 평생 유곽에 살면서 독한 술에 빠져 밤의 환락가를 그려 대다 알콜중독으로 요절을 했으니 범생이인 법(法)쟁이의 좁은 소견으로는 그랬을 것도 같다. 그런데 로트렉의 작품에서 불행이나 좌절, 고통이 막 드러나지는 않는다. 잔잔하게 흐르는 깊은 슬픔이 보이는 작품도 있지만, 로트렉이 대부분의 작품에서 가수, 배우, 매춘부들을 그려낸 방식을 보면 그 모델들이나 19세기 말 몽마르뜨의 밤 문화에 대한 담담하고 따뜻한 애정이 느껴진다. 어떤 작품에서는 유머와 위트도 넘친다. 집을 방문한 인테리어업자를 왕진의사처럼 그려내면서 안주인이 침대에서 그를 맞이하는 상황의 미묘한 분위기를 표현한 것도 그렇고, [자르댕 드 파리]의 홍보포스터에서 댄서인 제인 아브릴이 캉캉춤을 추느라 들고 있는 다리 앞부분에 첼로의 목을 쥔 남자 악사의 손을 털북숭이 손으로 그린 것을 보면 이 분에게는 숨길 수 없는 유머 본능이 꽤 있으시구나 싶다. 모델을 자신의 스튜디오로 불러 음흉함을 드러내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던 유명사진작가인 친구 폴 세스코를 위해 그린 포스터에서도 폴 세스코를 사진기의 천속에 얼굴을 넣은 채 다리를 벌리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 마치 구멍 속에 머리를 넣은 타조처럼 표현하고, 다리 사이로 늘어진 천과 사진기에서 성적인 연상을 하도록 그렸는데 이 부분에서는 피식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학창시절 모네, 드가, 고흐, 고갱은 배워 들어봤지만 동시대의 거장 로트렉을 잘 몰랐던 이유는 아마도 그가 유흥업소의 홍보 포스터를 그렸던 사람이라 교과서에서 다루기가 난감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혼자 추측해 본다. 로트렉은 포스터를 예술의 장르로 끌어 올린 사람으로 평가받는데, 그의 드로잉이나 수채화, 유화에 드러난 천재성을 보면 순수 회화만 했어도 역시 거장의 반열에 올랐을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마도 낮은 계층의 사람들 속에서 살았던 그의 품성이 그를 거리예술인 포스터의 세계로 이끌었을 것이다.

로트렉의 포스터를 보면 대담하면서도 해학적이고 단순한데 매우 인상적이다. 인상파니 야수파니 입체파니 어려운 유파의 이름을 몰라도 아무 상관없이 그냥 타임머신을 타고 19세기 말의 파리로 가 물랑루즈에서 불금을 즐기고 온 것 같은 행복한 관람이었다.


이윤정 교수 (강원대 로스쿨)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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