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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교수의 길어진 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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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는 방학이 있어서 참 좋겠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요즘 방학인데 뭐하고 지내냐"고 하면 딱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나름 할 일이 있더라"며 얼버무리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강의가 있는 학기 중이 사실 더 좋다. 방학이 되면 논문을 쓰고 책을 개정하는 작업을 해야 하므로 훨씬 부담이 된다. 학기 중에는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지도하면 되고, 학생들을 계속 만나게 되니 활력이 넘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6년 근무하고 1년간 갖게 되는 연구년에도 그냥 강의를 맡았었는데, 지금은 좀 후회가 되기도 한다.

 

이번 겨울방학에는 지난 학기에 준비하였던 논문을 마무리하여 연초에 게재하였고, 지난해 형사소송법 분야의 중요 판례도 검토하여 논문형식으로 작성 중에 있으며 교과서와 사례집도 계속 보완하고 있다. 형사법과 관련된 논쟁이 많았기에 언론사로부터 원고청탁도 많이 받아 글을 몇 차례 기고하기도 하였다. 제자들의 결혼식 주례도 두 번 맡았고, 초등학교 친구들과 주말을 이용하여 귀농한 친구의 딸기농장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법조인으로서 직접 사건을 접하지는 못하지만 언론과 판례, 그리고 각종 문헌을 통해 간접적이나마 계속 세상을 읽어보려고 노력하게 된다. 방학이지만 주중에는 연구실에 앉아 있으니 매일같이 기자들의 전화를 받고 형사법과 관련된 쟁점에 대해 듣고 한마디씩 하면서 배우게 된다. 방학이 시작되면서 정부와 여당이 원하는 대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이 제정되고 검경수사권조정법안이 통과되었는데도 추미애 국회의원이 법무부장관이 된 직후에 검찰총장과 협의없이 수사팀을 해체하는 검찰인사, 공소장의 비공개, 수사와 기소검사 분리 등이 추진되는 것을 보면 무슨 ‘관종’도 아니고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더구나 해외순방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공소시효가 지난 일이라도 철저히 규명하라며 개별 사건들에도 일일이 참견하던 대통령이 울산시장 선거개입사건으로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관여하고 대통령의 개입까지 국민들이 의심하고 있는데도 끝내 침묵하는 것을 보면서 앞으로의 정국이 걱정되고 어둠의 그림자가 서서히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보석으로 석방되었다가 2심에서 17년형이 선고되어 350일 만에 다시 구속되었다. 2년이 추가되긴 하였지만 80세의 노인에게 보석취소가 과연 불가피하였을까. 불구속재판의 원칙이 아니라 구속기간제한 회피를 위한 보석이었다고 본다. 하여튼 권력을 빼앗기면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현실이 참 암울하다. 

 

이런 와중에 코로나19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대학의 2주 개강연기에 이어 초중고교까지 개학이 연기되었다. 대학마다 귀국하는 중국인 유학생들에게 공포를 느끼고 있고, 개강까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을까 노심초사다. 

 

"당신이 검사냐"와 "정말 거지 같다"는 지금 시대를 정의해 주는 끔찍하지만 가장 솔직한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고 있다. 

 

이번 방학은 너무 길고 우울한 방학이 되었다. 빨리 생기 넘치는 청춘들이 활보하는 대학 교정을 보고 싶다.

 

 

이창현 교수 (한국외대 로스쿨)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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